여권신장 부작용(연변 조선족 1백년:6)

여권신장 부작용(연변 조선족 1백년:6)

최인학 기자 기자
입력 1994-11-18 00:00
수정 1994-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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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거의가 사회 참여… 시부모 모시기 기피

중국 조선족의 여성 활동은 눈부시다.사회적 정치적 활동과 아울러 경제적 면에서도 여성의 위치는 확고하다.1990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 조선족 남녀의 연간 수입 비례는 1백대92.68로 나타난 것만 보아도 거의 남녀가 동위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학의 입장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와 위상의 변천을 생각할때 거의 한국과 유사하나 지정학적 이유로 인한 약간의 차이점이 발견된다.광복을 맞이하기까지는 유교의 엄숙한 부덕의 덕목을 지켜야 할 여필종부의 사회 의식이 자리한 것은 한국과 다를바 없다.그러나 광복후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남녀동등권이 사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교육을 통해 여성 자각 의식을 고취시켰다.그렇지만 문제는 여성들의 자각 속도에 비해 남성들의 의식 변화는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그러므로 남녀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일종의 사회병리가 쌓여갔다.

○현모양처 사상 사라져

예컨대 여성의 사회 참여로 발생된 가정의 빈 공간을 채울 대역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 남성이 이 자리를 보완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러다가 문화대혁명이 발생했다.1966년부터 76년 사이의 문화대혁명 기간은 물리적으로 여성 권위 회복의 운동이 일어났던 때다.이 기간 동안 여성들은 가정도 우정도 혁명에 우선될수 없다는 사상으로 계몽되었다.바꾸어 말하면 혁명을 위해서는 이것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문화대혁명의 10년간 지극히 가정적이라는 호평을 받아왔던 조선족 여성들은 상당한 변모를 하면서 억세어졌다.공자의 유교사상과 전통적 여성의 현모양처 사상이 정면으로 부정 당하면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0년만에 붕괴되고,서서히 자유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이 여성 권리에 대한 재고의 기간으로 간주된다.단순히 여성이 가정으로부터 사회로 진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신체적 생리적으로 남성과 다른 조건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요구하게끔 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운동이 90년대 들어서면서 확립된다.

그러면조선족 여성 문제와 관련되는 고부간의 갈등은 연변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연변에서 불리는 다음 민요 한수가 며느리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백두산보다 더 높은 시아버지,

고추 후추보다 더 매운 시어머니,

외나무 다리보다 더 어려운 시형,

배두잎보다 더 푸른 맏동서,

종콩알보다 더 발가진 시동생,

올빼미 눈보다 더 밝은 시누이 눈,

참대보다 더 곧은 남편…」

며느리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임을 이 민요는 보인다.마지막 보루인 남편마저 여기서는 「융통성 없는 인간」으로 비치고 있다.한국의 전통적 며느리와 진배없다.그러면 조선족 여성사에 표출된 고부간의 갈등은 어떤 것일까.이명숙·최복순 두 분의 논문 「고부 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고찰」이 이 문제를 잘 해명하고 있다.

고부간의 관계란 준혈연 관계다.갈등이 생기면 모자나 모녀간에는 잘 풀어지지만 고부간에는 겉으로는 풀어질지언정 심리적으로는 앙금으로 남는다.그래서 요즘 미혼녀들 사이에 유행하는 속어가 있다.『동무의 집에 염소와 투레기가 있습니까?』하고 묻는다.만일 있다면 『다른 물건은 다 가져도 염소와 투레기는 못 가지겠다』는 말이다.염소는 시아버지를 말하고 투레기란 시어머니를 말한다.경제적으로 어쩔수 없이 아들에게 얹혀사는 노부부는 참고 견뎌야만 한다.

○「시부모 유무」 결혼조건

참는데도 한계가 있으므로 극에 달하면 정면으로 며느리에게 항거한다.「내가 있으면 네가 없다」는 식이다.이 말은 죽냐 사냐 결판을 내자는 뜻이다.재미있는 것은 현행법 규정이다.「너도 있고 나도 있어야지,그 누구도 집밖에 쫓겨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길이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가정에는 「총리」가 있다.며느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머니가 총리였다.며느리가 들어오자 총리를 놓고 갈등이 심화된다.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없는 시어머니는 총리를 쥐고 있기엔 불안하다.만일 며느리에게 양도하면 냉전은 사라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냉전이 지속된다.연변에는 이러한 문제로 가정이 불안한 상태가 전체의 반이나 된다.

○절반이상이 가정 불화며느리는 남편을 「우리」라고 호칭하고 시어머니를 「그」라고 호칭하면서도 「우리 어머니」라고는 부르지 않는다.이처럼 호칭 상으로도 시어머니는 소외를 당하고 있다.또 며느리를 맞기 전에는 무엇이나 어머니와 먼저 의논하더니 며느리가 들어오자 자기 마누라와 먼저 상의한 후에야 어머니에게 통고한다.이런 환경에서 남편의 중재적 역할은 매우 절실하다.사회주의 국가는 남녀 공히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정치·사회·문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 증식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므로 노부모는 경제적으로 자식에게 넘겨 줄 유산도 없고,노후를 자식에게 기댈수 밖에 없다.한편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는 것도 단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이 되도록 호소하는 길 뿐이다.

사회 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경제질서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핵가족의 확산이라는 반대급부를 초래했다.현재 핵가족의 수는 날로 확대해 가는 실정이다.1990년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서는 핵가족이 68%이고,농촌에서는 66.28%임은 이러한 것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가정도 사실은 부모를 모신다는 효가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젊은 부부가 함께 뛰자니 집안을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이 현재 안고 있는 사회 고민이 이곳 연변에서도 가속으로 추격해 오고 있음을 볼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최인학 인하대교수·비교민속학>
1994-11-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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