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보다 중요한 적법성/우득정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명분보다 중요한 적법성/우득정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우득정 기자 기자
입력 1994-05-24 00:00
수정 1994-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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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대 정치자금 의혹사건과 관련,수표추적 문제가 정치권의 쟁점으로 부각되며 금융실명제가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권은 실명제의 「금융거래 비밀보호」 조항을 들어 난색을 표하는 반면 야권은 정치자금 의혹을 규명하려면 수표추적이 필수적이라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정치권의 이런 논쟁만 보면 「실명제만 되면 돈의 흐름이 투명하게 돼 검은 돈은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게 된다」던 실명제의 명분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실명제가 검은 돈을 햇볕 아래로 끌어내기는 커녕 도리어 비리를 숨겨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과거 법의 범위를 넘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자금추적의 향수를 생각하면 지금의 금융거래 비밀조항은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융통성이 없다.또 검은 돈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자금추적을 해야 하는 관련법은 자칫 독소조항으로까지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듯한 정치 명분에도 불구하고 자금추적이 비리를 척결하는 만병통치약인 듯 내세우는 주장에도 허점이 도사리고 있다.

야권의 주장대로 정치권의 합의나 여권의 「성의」를 앞세워 과거의 투망식 자금추적 관행을 답습한다면 편의성이 적법성을 압도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명분이 법과 제도를 압도하는 명분 만능주의가 성행하는 부작용을 낳게 되는 것이다.

실명제의 궁극 목표는 소수의 비리를 척결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자금의 흐름을 정상화하자는 데 있다.실명제 이전까지 국민총생산의 약 10%인 30조원으로 추정됐던 음성자금을 제도금융권으로 흡수하자는 데 보다 큰 뜻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취지를 감안한다면 당장 다소의 불편이 있더라도 금융거래의 비밀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정치권의 주장대로 편의에 따라 금융거래의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면,「금융대란」은 아니라도 소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공연히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지나 않을 지 걱정된다.
1994-05-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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