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정치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이목희 기자 기자
입력 1992-06-29 00:00
수정 1992-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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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반민주」 대결구도·권위주의 청산/다양한 이념포용… 「보통사람」의 시대로/국회권한 강화로 「과거청산」도 과감히/전방위외교 추진해 세계속 한국위상 높여/여당 대선후보 자유경선·지자제실시등 큰 성과

「오늘은 기쁜 날,찻값은 받지 않습니다」5년전 6·29선언이 있던 날 서울의 어느 찻집에 써붙였던 글귀는 당시의 전국민의 감정을 한마디로 나타낸 것이었다.사회 전반의 경직된 분위기를 일소하고 권위주의의 청산으로 민주화의 훈풍은 예고했던 6·29선언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었고 그 성과는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에 6·29가 미친 파장과 앞으로의 과제를 정치부기자의 방담을 통해 엮어본다.<편집자주>

­민주화의 새 장을 열었던 6·29선언이 있은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그동안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었죠.

­그렇습니다.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지요.우리 국민들은 너무 쉽게 과거를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권위주의통치의 마감을 알리는 6·29선언이 있던 날,모두들 얼마나 감격했습니까.서울의 한 다방 여주인은 「오늘은 기쁜 날,차값은 무료입니다」라고 써붙이고 고객들에게 서비스함으로써 기쁨을 자축했지요.

○“오늘은 기쁜날…”

­6·29선언이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민주화가 이룩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되겠습니다.우리가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민주적 정치행태들이 6·29정신의 영향아래 가꾸어진 것들이라는 점을 알아야하겠지요.

­노태우대통령은 6·29선언후 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곧 6·29실천에 착수했습니다.「보통사람의 시대」개막을 주창했던 노대통령은 대통령당선자의 신분으로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다녔고 와이셔츠차림의 회의주재모습을 언론에 보이는등 그야말로 비특권인임을 과시했습니다.

­노대통령은 또 취임이후에도 「각하」라는 용어를 쓰지 말도록 지시했습니다.청와대를 개방하고 회의용 탁자를 전부 원탁으로 바꾼것도 권위주의시대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요.

­사전에 짜인 각본에 의해 진행되던 대통령기자회견이 콘티없이 이뤄져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그밖에 대통령 외출시 몇시간씩 교통통제를 실시하던 것도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되는등 대통령의 일반적 움직임과 관련된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6·29선언이 우리정치에 미친 영향은 집권 여당의 민주화로 상징됩니다.도중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여당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후를 자유경선을 통해 탄생시켰지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은 정말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사건이었습니다.중도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일단 시도했다는 자체로서도 평가할만 하지요.

­여당내에 점차 비주류가 자리잡아가는 것도 특기할만 합니다.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획일적으로 움직이던 과거 예를 들며 「통치권 누수」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으나 너무 단편적 시각인 것같습니다.민주주의란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가운데 최선의 정책을 찾아내는 것 아니겠습니까.대통령이 힘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그것을 절제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 분화 뚜렷

­노대통령이 야권의 대표적 투사였던 김영삼 민자당대표에게 대권후보자리를 넘겨준 것도 쉬운 결단은 아니었을 겁니다.노대통령은 우리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여야의 정권교체가 필요하나 그것을 한꺼번에 이루기보다는 단계적으로 이룩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때문에 3당통합을 통해 김대표를 받아들여 여당 지도자의 면모를 가꾼뒤 후계를 삼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요.

­여야관계나 국회운영에 있어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가 청산된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과거에는 권위주의정권과 그에 항거하는 재야인사간의 갈등이 그야말로 사생결단 양상이었지요.6·29선언이후에는 이러한 여건이 상당히 달라졌습니다.민주화투쟁보다는 정책이나 이념에 따른 정치권의 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고 보여집니다.

­일부 야권 인사들이 아직 구태를 떨치지 못하고 간혹 극한 투쟁에 나서보기도 하지만 예전같은 국민호응은 없다는게 일반적관측입니다.

­군장성출신들이 대거 야당에 입당한다든지 극렬 재야 운동권인사들이 제도권 정당에 들어오는 현상이 빈번해진 것도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여야총재나 대표사이의 만남이 잦아진 것도 6·29선언이후의 변화입니다.대통령이 정치현안해결에 직접 나서 야당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보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이해됩니다.이같은 타협적 태도가 여야 3당의 합당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사건을 가져오기도 했지요.

­국회 국정감·조사권이 부활되는등 국회의 권능이 대폭 강화된 것도 지적해야겠습니다.「청문회정국」이란 말을 낳으면서 부작용이 드러나기도 했으나 전직 국가원수의 국회증언이 이뤄지는등 국회활동을 통한 과거청산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었지요.정부의 추곡가결정에 국회동의를 받도록 하는등 주요 정책사안에 대한 국회심의권한도 강화됐습니다.

­지방의회 구성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도 6·29선언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요.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어가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군림하는 정치인에서 봉사하는 정치인으로서 빠른 자세변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민주적 절차도 착실히 마련되어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6공초기 노사분규가 악화되면서 민주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과도기를 거친뒤 점차 노사간에도 화합·타협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대통령 희화화 허용

­학원자율화·해외여행자유화·문화예술인에 대한 제한없는 창작활동허용등 사회 각 분야에 있어서의 자율화조치도 정착되어가고 있는데 이의 바탕에는 6·29선언에 따른 정치민주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6·29선언으로 신문·방송등 언론매체도 상당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매체의 등록개방으로 다양한 간행물과 방송이 출현,6·29선언이후 53개의 일간지와 5개의 방송,그리고 2천84개의 주간·월간지가 새로이 늘어난 거죠.

­더욱이 이같은 양적 팽창 뿐만아니라 언론의 보도기능에 있어서도 질적인 수준향상이 이뤄졌다는 게 특이할만 합니다.

­각 언론이 제한없는 보도와 비판,풍자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직대통령을 코미디소재로도 활용하는 이른바 「대통령의 희화화」를 꼽을수 있죠.대통령을 마음대로 비판하고 또 대통령의 실수만을 소재로 한 책도 여러권 출판됐습니다.

­이러한 언론의 보도양태로 국민들은 어느 장소에서든 누구나 자유롭게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할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됐죠.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셈입니다.국회의원들도 이같은 매스컴정치시대를 맞아 자신들의 새 이미지창출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질정입니다.

○언론 보도기능 강화

­그렇습니다.그 당시에는 중앙일간지의 경우 조·석간 각3사체제로 운영한 데다 지방지도 시·도별 1개씩으로 제한했었습니다.거기에도 정부의 입김이 많이 좌우되었던 형편이었지요.그러나 이제 공영방송도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고 민방도 생겨났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취재와 보도가 금지되었던 「성역」이 사라진 셈이지요.따라서 「유비통신」의 위력이 약화되었고 외신을 절대시하던 풍조도 없어졌습니다.

­6·29이전의 웃지못할 얘기를 소개해보죠.5공시절 한동안 현직대통령을 두고 「땡」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인구에 회자했습니다.

­정각9시 뉴스시작을 알리는 「땡」소리와 함께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동정기사가 10여분 이상 계속됐던 것을 말하는 거죠.당시는 대통령기사에 대한 일정 지면과 방송시간 할애는 무조건적이었습니다.

­또 현직대통령과 외모가 너무 닮았다고 해서 탤런트 모씨의 TV출연이 장기간 금지된 실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황을 비교해보니 언론계도 6·29이전에 비해 엄청난 지각변동을 경험한 셈이군요.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너무 변화속도가 지나쳐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방종」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대두하는 실정입니다.

­6·29선언 이후 6공정부의 외교스타일도 많이 달라졌죠.6·29선언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전세계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고 노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전방위외교를 펼쳐 회기적인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은 이제 중국,쿠바정도 뿐입니다.

­이러헌 북방외교의 성과는 그대로 남북관계진전으로 이어져 남북통일의 튼튼한 받침대를 마련했다고 평가됩니다.<정리=이목희·한종태기자>

▷정치부기자 방담◁

김만호 정치부 차장 구본영 〃

김명서 정치부 기자 최철호 〃

김경홍 〃 유 민 〃

황진선 〃 문호영 〃

이목희 〃 윤승모 〃

양승현 〃 박정현 〃

유상덕 〃 김현철 〃

김영철 서울시의원, 강동구 특별교부금 14억 3000만원 확보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김영철 의원(국민의힘, 강동5)이 강동구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서울시 특별교부금 14억 3000만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번 특별교부금은 노후 공원과 보행환경 개선, 범죄 예방 인프라 확충 등 주민 체감도가 높은 생활환경 개선 사업에 집중 투입되며, 강동구 성내·천호·둔촌 일대의 안전성과 도시 환경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별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람어린이공원 재정비(4억원) 성내동 444-6번지에 위치한 보람어린이공원을 대상으로 노후 공원시설물을 전면 정비한다. 어린이 이용이 잦은 공간 특성을 고려해 ▲노후 놀이·휴게시설 교체 ▲바닥 포장 정비 ▲녹지대 개선 등을 추진하며, 총사업 면적은 989.9㎡이다. 본 사업을 통해 아이와 보호자 모두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쾌적한 근린공원 환경 조성이 기대된다. 천호·성내지역 공원 내 전기시설 정비(2억 5000만원) 강동구 관내 근린공원 13개소를 대상으로 노후 공원등과 분전함을 교체·정비한다. 공원등 74등과 분전함 13면을 교체하고, 공원등 8등을 추가 설치해 야간 이용 안전성을 높이고 전기시설 사고를 예방할 계획이다. 천호·성내·둔촌지역 방범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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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태 〃 이도운 〃
1992-06-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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