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한인타운 피해지역을 가다(현지르포)

LA한인타운 피해지역을 가다(현지르포)

유민 기자 기자
입력 1992-05-04 00:00
수정 199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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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할라”… 쌀부대 쌓아 놓고 상점경계/거리마다 형체 모를 전소된 건물 즐비/주로 전자·금은방 방화약탈… 피해 극심

5월2일 하오 4시(현지시간)제퍼슨 스트리트.

곳곳마다 신호등이 끊겨 있었다.길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해 있었지만 흑인들만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주택들은 매우 낡은 모습이었고 주위는 대낮이었는데도 왠지 음산했다.

집마당의 잔디는 수개월을 깍지 않고 그대로 놔둬 보기 싫게 자랐다.미국사회에서는 보기힘든 뾰족담장도 많았다.잠시 눈길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렌터카주위에 다른 차를 타고 있는 사람도 한결같이 흑인뿐이었다.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차에서 내려 길을 물었다.

『이웃 아담스·제퍼슨·워싱턴가가 모두 우리들(흑인)만 사는 곳입니다.코리아타운은 저쪽으로 가야합니다.이곳은 소요가 처음 일어난 곳과 가까워 위험합니다』 한 60대 흑인노인이 일러준대로 북쪽으로 달렸다.5분쯤 뒤.

이윽고 찾고자 하는 곳이 시야에 들어왔다.웨스턴버몬트 8가지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가운데 가장 피해가 컸던 곳이다.2,3층 건물이 형체를 모를 정도로 전소돼 있었다.방화 대상은 주로 전자상가,금은방,옷,신발가게였으며 현금이 많이 거래되고 있는 곳이 주요 타겟인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1일 밤까지 계속된 약탈·방화의 주체는 소요를 일으킨 「흑인」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많이 고용된 「멕시칸」이라는 사실이다.버몬트 코스모스전자상점에서 만난 김영난씨(48·주부)는 『지난 3일동안 흑인들은 갖가지 총을 들고 무장한채 소요에 앞장서긴 했지만 그들의 분노대상은 미국당국과 백인이었다』면서 『이들이 흥분만 하는동안 주로 한국인 가게사정에 밝은 멕시코 고용인들이 가게문을 부수고 들어가 약탈과 함께 화염병을 만들어 던졌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피해가 더욱 컸던 것은 미당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대우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LA경찰청·소방관서들은 한국인으로부터 신고를 받으면 이를 묵살해버리거나 30∼40분 늑장 출동하는 일이 예사였다는 것이다.

하오 5시쯤 버몬트가에서 내려다본 한인 상가들은 소요가 거의 진정됐는데도 대부분 상가문을 굳게 닫아놓은 상태였다.그러나 한미플라자와 이웃 웨스턴가 일부에서는 교포들이 가게앞 깨진 유리창등을 쓸어내며 삼삼오오 피해복구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다른곳에서는 피습에 대비하기 위해 나무판으로 상가문을 봉쇄하거나 머리에 흰띠를 두른 젊은이들이 쌀부대로 만든 바리케이드주변에서 중무장을 하고 상가주위를 자체 경비하기도했다.

1일 하오 늦게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연방군들의 모습도 간혹 목격됐다.그러나 버몬트3가의 「할리트런」전자백화점등 규모가 큰 몇몇곳에 3∼5명 정도 배치한 것이 고작이었다.

한인교포 대부분은 이같은 미정부의 행태를 볼 때 미국내문제(흑인과 백인의 갈등)를 한인과 흑인등 소수민족간의 문제로 돌리려는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즉 그들이 핵심문제를 방관하는 사이 엉뚱하게 한국인만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버몬트·웨스턴가의 큰 상가들은 지난달 30일 이후 자경단을 편성하거나 자체 고용한 경비대들의24시간 감시 활동을 폄으로써 그런대로 피해를 줄였다.「스리프티」 「동대문스와밋」 「첵스 앤드 캐시」등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상점들은 약탈·방화에 속수무책이었다.특히 「첵스 앤드 캐시」등 불법취업자등을 위해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지하금융기관」여러곳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현금이 털리기도 했다.<로스앤젤레스=유민특파원>
1992-05-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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