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궁 주변에 세계최대 「벼룩시장」(러시아에선 지금…:5)

크렘린궁 주변에 세계최대 「벼룩시장」(러시아에선 지금…:5)

이기동 기자 기자
입력 1992-04-22 00:00
수정 199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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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서 춘화까지 거래… 수만명 북적/사상허용 후 “돈벌자” 외국인 몰려/“시장경제 난장판” 일부선 부정적시각도

크렘린에서 멀지않은 루비앙카광장 한쪽 제르스키 미르(어린이 백화점)일대 거리에는 지금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벼룩시장」이 들어서 있다.수만명의 인파가 매일 백화점앞 도로에서부터 인근 중앙백화점까지 꽉 들어차 웬만해선 발을 들여놓기조차 어려울 정도이다.지난 1월초 옐친대통령이 사기업들의 영업을 활성화하고 공장창고와 시민들의 집안에 사재기해둔 물건들을 밖으로 끌어 낸다는 명분하에 시행한 개인상행위자유화조치이후 생겨난 현상이다.

중앙백화점 입구쪽은 스타킹·어린이점퍼·여성옷가지등을 펼쳐들고 서있는 사람들로 꽉들어 찾고 그 옆에 한 청년이 간이탁자에다 외제 버번·코냑·진등을 잔뜩 차려 놓고 있다.유모차에서부터 어른자전거까지 자전거류를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제법 번듯한 판매대를 차려 놓고 프랑스제 화장품,터키제 가죽제품,이탈리아제 선글라스까지 진열해 놓은 곳도 있다.

물론 이런 외제물건들은 2천∼3천루블에서 10만루블이 넘는것에 이르기까지 너무 비싸 좀처럼 사는 사람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적힌 방한화를 2천5백루블에 팔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팔러 나온 사람들을 보면 각국에서 몰려온 보따리장수들을 비롯,연금생활을 하는 노인,가정주부,일하다 슬쩍 빠져나온 직장인,학교를 중퇴하고 거리로 나선 국민학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사람들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티흐노바(45)라는 부인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시장경제가 이런 것인줄 몰랐다.이건 완전 난장판』이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기자가 보기에도 너무 가격체계도 없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서 이런식의 상행위가 러시아경제에 과연 어떤 기여를 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정부는 이 자유시장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것같다.가이다르 부총리의 대변인인 세르게이 콜레스니코프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제 제르스키 미르앞에 가면 못사는 물건이 없다.가격이 조금 비싼 것이 흠이긴 하지만 물건은 얼마든지 있다』고 호언했다.

러시아·폴란드 합작무역회사의 이고르사장(42)도 『러시아경제를 살리고 과거 경직된 국가통제체제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선 이런 개인상행위가 적어도 1년은 더 계속되어야 할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모스크바시 소비자보호위원회위원인 안드레이 샤벨레예프씨는 『정부가 개인상행위에 대해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했다』며 이런 원시적인 시장형태가 모스크바시내 한가운데서 더이상 계속돼선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실제로 사람들은 백화점내 통로·계단·점포앞에까지 진출해 물건을 파는데 그 수자가 너무 많아 경찰이 단속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거리에서 파는 식품들의 위생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우유·피클·주스·빵,심지어 생선에 이르기까지 위생검사가 전혀 안된채 거리에서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모스크바의사회에서는 시당국에 대해 거리에서의 식품판매행위를 중지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제출했다.지난 2∼3월 사이에 거리에서 파는 식품을 사먹고 생긴 배탈환자가 수십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아울러 품질검사를 받지 않고 유해색소를 사용해 만든 어린이장난감들이 거리에서 팔리고 있다며 이에대한 단속도 호소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입장은 또 다르다.중앙백화점 옆골목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책을 파는 스타니슬라프씨(40)는 단순히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한밑천 잡아 무역회사를 차리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12년간 미그기조립공장노동자로 일해온 그는 지난해말 공장을 그만두고 거리의 책장사를 시작했는데 하루 순수익이 1천루블 정도 된다고 했다.파는 책들은 주로 소설류지만 묵은 도색잡지들도 표지를 바꿔 팔고 있었다.「플레이보이」「펜트하우스」등 도색잡지들은 한권당 4백루블,한번 보는데 5루블씩 받는데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그는 5월쯤이면 사무실을 내고 물건을 떼러 폴란드로 첫출장을 갈 계획이라며 의욕에 차있었다.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거리의 악사들도 모스크바의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4∼5명이 한조가 돼 외국관광객들과 밤늦은 시간 취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이들은 연주실력도 수준급인 경우가 많다.

아르바트거리에서 러시아민요를 연주하는 4명의 젊은이들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음악대학 동기생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하루 수입이 달러까지 합쳐 3천루블은 된다고 했다.이렇게 돈을 모아서 러시아 전통음악 공연장을 여는게 자기들의 목표라고 했다.

시장경제로 가는 길은 예기치 않은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도 함께 안겨다주고 있는 것이다.<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1992-04-2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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