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농민이나 쌀이 넘치고 쌓여 주체를 못하는 터에 한 책임있는 외교관이 「얼마간의 쌀 수입이 불가피하다」고 했으니 「이런 죽일 놈이 있나」하고 욕설부터 하는 농민들에게 크게 이의를 제기하고 나설 사람은 당장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몇 년 전에 양담배를 서랍에 갖고 있은 죄로 문교부의 한 고위관리가 목이 잘린 일도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 정신나간 사람」 정도로 생각했을 때 외국에서는 양담배를 소지한 죄로 관리가 목 잘리는 「그런 나라가 한국」이라며 빈정대고 웃었다. 요즈음은 어느 건물에나 무인 판매대엔 각종 양담배가 즐비하고 「안된다」던 수입쇠고기도 이제는 국내 소비의 절반에 이르렀다. 그렇게 세상은 변했다. ◆3년 전 미국의 자동차 공장 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는 노조원들이 망치로 일본차를 때려 부수는 해프닝이 있었고 그곳 출신 한 하원 의원은 일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보좌관에게는 의사당내 주차권을 주지 않겠다고 말해 미디어의 주목을 끈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도 연간 2백만대의 일제차는 미국내에서 팔려나가고 고장없는 차로 인기가 높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그런 와중에 우리나라도 해외에 자동차도 수출하고 텔레비전과 신발 등 각종 물품을 저쪽 눈치를 봐가며 팔아 오늘날 이만큼의 고도성장을 이뤘다. 교역은 일방통행일 수 없다며 너의 시장문도 열지 않으면 우리 시장만 열어 놓을 수 없다며 저들의 으름장은 대단하다. ◆박수길 제네바 주재 대사는 바로 이 같은 일을 맡은 우루과이라운드의 우리측 실무협상 대표다. 그는 「쌀을 수입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는 불가피론을 편 것이었다. 이 시기에,협상대표인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해서 되느냐는 데는 물론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농민들이 「무슨 소리냐」 「그런 사람 소환하라」는 울분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국회 농수산위가 기껏 박 대사의 본국소환이나 결의한 데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 보다는 그를 불러 그곳 형편을 듣고 걱정을 함께하며 대안을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닐까. 소리치고 욕해서 막아질 수만 있다면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1991-04-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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