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가격인상…줄서기는 여전/김영만특파원 모스크바표정 긴급보고

유례없는 가격인상…줄서기는 여전/김영만특파원 모스크바표정 긴급보고

김영만 기자 기자
입력 1991-04-03 00:00
수정 1991-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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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등 값 올랐지만 「품귀」 해소 못해/시민들,「인플레 면역」된듯 동요는 없어/페레스트로이카 성패 가름할 가격혁명… 효과는 회의적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소련의 미래를 건 또 하나의 혁명이 2일 소련전역에서 시작됐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포고한 대로 소련국가 가격위원회는 이 날자로 대부분의 생필품에 대해 60%에서 3백%까지의 물가인상을 단행했다. 정부직영의 모든 상점이 이날 개장시간에 맞춰 새로운 가격표를 내 걺으로써 소연방창설 이래 전례가 없는 가격인상이 소련국민들 앞에 현실로 등장한 것이다.

빵은 30코페이카(1루블=1백코페이카)에서 60코페이카로,생선은 ㎏당 1.80루블에서 5.40루블로 인상됐다. 돼지고기는 1.90루블에서 6루블로,쇠고기는 2루블에서 7블루로 인상된 가격표가 내걸렸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래 수많은 개혁조치가 이루어졌지만 전국민을,그것도 국민의 실생활을 직접 개혁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날의 가격인상 조치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만큼 고르비정권으로서는 위험부담이 큰 셈이다.동시에 이날의 가격인상조치가 큰 후유증 없이 정착되고 생산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난다면 시장경제로 가는 소련의 경제개혁정책은 한 개의 큰 고비를 넘는 셈이 된다.

전례없는 가격인상을 전후해 모스크바는 생각보다 훨씬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앞으로의 가계운영을 우려했다. 그러나 새로운 가격표 앞에서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 듯해 보였다.

소련 당국은 보름 전부터 품목별 가격인상률을 발표해 왔다. 비록 실패했지만 지난해 여름 이미 물가인상을 한차례 시도한 바 있었다. 모스크바가 물가인상 당일 예상외로 평온을 유지한 것은 시민들이 이런 조치들로 인해 물가인상에 대한 면역성을 나름대로 획득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

이와 함께 당국이 실시한 물가인상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비록 충분하진 않더라도 시민들의 심리적 동요를 막는데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 당국은 물가인상이 이루어지기 전인 3월중에 국민 1인당 60루블씩의 보조금을 지급,물가폭등의 폭발성을 낮추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60루블은 소련 근로자 평균임금의 약 20%에 해당한다.

그러나 물가인상을 전후해 있었던 모스크바의 평온이 이번 물가인상의 성패를 전망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성싶다. 정부당국은 이번 물가인상 조치가 시장경제로 가는 가격자율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이며 생산자들의 생산의욕을 높여 물자품귀를 해소해줄 것으로 믿고 있고 또 그렇게 홍보해 왔다. 이에 비해 급진개혁 세력들은 그 정도로는 생산 의욕을 높여나갈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물가는 3백%씩 뛰었음에도 여전히 물자품귀현상이 계속되고 품질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고르비 정권과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불신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

모스크바의 중심가인 드베르스카야 거리의 식품가게 블로츠나 앞에서 만난 일리나(46)씨는 가격인상으로 자신들의 생활은 현재보다 한참 나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 조치로 줄을 서지 않고도 빵을 살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을 것이며 자신들은 여전히 줄을 서고 빵값은 3배가 오르게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직업이 엔지니어인 그녀의 월 가계총수입은 9백90루블이었다. 자신의 봉급이 2백,남편의 봉급 4백,학생인 딸에 대한 보조금60,사위의 봉급 2백10,친정어머니의 연금1백20루블 등이다. 여기에 물가인상에 대한 정부보조금 3백루블이 새로 보태져 총 가계수입은 1천2백90루블로 늘어났지만 그것이 가격인상분을 상쇄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고 했다.

소련 국민들의 걱정은 이미 일반 소비재의 40% 가까이를 공급해온 협동조합상점의 물건값과 서비스요금 등의 인상은 정부가 고시한 인상률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데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계산한 것보다 실제로는 더 나쁜 파급효과가 국민생활에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한다.

고르비 정부의 유례없는 가격 인상조치의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정부가 생산농민과 기업에 지급해오던 판매가격과 생산비 차액에 대한 보조금지급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데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소련은 생산비용과 상관없이 임금구조와 재정규모를 고려해 생필품의 산매가격을 결정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의 경우 생산비 정부보조금은 5백40억달러로 전체 예산적자의 58%를 차지했다. 올해의 보조금 수요는 9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정부가 더 이상 이를 부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 하나의 이유이자 정부의 논리는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가격구조정상화란 소련국민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경제이론이다. 정부당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악이 이번 가격개혁 조치일 수 있다. 경제논리로도 그렇다.

그러나 당분간 적어도 이번 가격개혁조치가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소련 국민들에게 살인적인 가격인상은 더 못 살게 되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밖에 없다. 이번의 대폭적인 물가인상은 무려 3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주부들에게는 자신들이 주부가 되고 난 이후 처음으로 겪는 경제인식까지를 뒤흔드는 혼란일 수 있다. 그 충격은 시장경제체제에서 보는 물가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련­스위스 경제협력사무국에 근무하는 알렉세이(30)씨는 고르비정권에 경제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비전이 없다면서 가격인상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의 성공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생각과 달리 근로자들이 근로 의욕을 높이기보다는 물가인상으로 인한 임금삭감 효과를 보충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일터보다는 부업에 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물가인상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1∼2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인상이 우려했던 대로 부정적인 효과만 낳는다면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시위는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피할 수 없는 연방의 명운과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 제2의 국민투표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1991-04-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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