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 신바람나야 한다/안충영 중앙대교수ㆍ경제학(서울시론)

제조업이 신바람나야 한다/안충영 중앙대교수ㆍ경제학(서울시론)

안충영 기자 기자
입력 1990-11-06 00:00
수정 1990-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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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 비대는 “경제조로”의 신호

스무살이 갓 넘어선 청년의 얼굴 곳곳에 주름살이 괴고 신체에 탄력이 없이 굳어 보이면 조로현상이 있다는 표현을 쓴다. 지금 우리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5천달러 수준의 젊은 나이에 비교하여 벌써 늙어 버리는 조짐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작년과 올해를 고비로 우리경제는 신체의 탄력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활력의 재충전도 게을리 하고 있다.

○자금흐름의 왜곡 심화

우선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8년의 32.5%에서 89년에는 31.3%로 낮아지고 올해에는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이른바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은 경제의 대들보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인력과 자금이 제조업을 떠나서 소비형 서비스 업종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으니 수출주문이 있어도 적기에 맞추지도 못해 손님을 잃어가고 있다.

올 1ㆍ4분기 취업자수는 전년동기에 비교해서 2.5%포인트나 감소한 반면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취업자수는 각각 6.8%와 18.7%로 증가하였다. 지금 금형ㆍ주물ㆍ열 및 표면처리등의 부품생산 현장은 기능인력을 못구해 전자업계까지 부품조달에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이는 결국 수출에까지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관광ㆍ레저ㆍ유흥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고급화되고 번창하고 있다. 힘드는 생산현장을 떠난 근로인력이 소비형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됨으로써 이제 우리의 전통적 근로관에도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편 자금의 흐름도 경제의 건강을 회복하기는 커녕 노쇠화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간여신중 제조업에 대한 비중은 86년의 50%에서 90년 4월말에는 40.4%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동안 건설 및 서비스업에 대한 대출은 44.8%에서 48.5%로 높아졌다.

제조업의 수익률이 낮고 수면아래 잠복하고 있는 노사분규의 위험성은 기업가들로 하여금 제조업에 대한 확장이나 합리화 투자보다는 사업의 축소나 안전위주로 몸을 도사리게 만들고 마침내 「아직도 제조업을 하십니까」라는 시중의 유행어를 낳게 하고 있다.

○나라 망치는 과소비병

1인당 소득 5천달러에서 일고 있는 우리의 소비행동은 1인당 소득 2만달러 이상의 선진국형 소비행태에 못지않게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파리에서 목격한 승용차는 대부분 우리나라의 최소형 승용차보다 더 작은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틈엔가 중형차 이상으로 승용차가 바뀌고 1가구당 두대 이상 보유가 늘어나서 대도시 길거리는 온통 주차장으로 바뀌고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정지된 자동차속에서 우리는 고가의 기름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수출품을 빨리 실어 날라야할 화물차들이 도로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꼴이다.

해외여행은 이제 저소득계층에로 불이 붙고 동남아 곳곳에서 싹쓸이 쇼핑에 여념이 없는 한국관광객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소비와 함께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국내 저축률이 최근 크게 떨어지고 있다.

체너리와 쉬르킨 같은 경제학자들은 1인당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오늘날 선진국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산업구조 변화의 측면에서 분석한후 하나의 경험적 법칙을 도출하였다. 1인당 소득수준이 1천달러에서 2만달러에 이르는 동안 모든 경제의 선도산업들은 농업중심의 전통사회에서 노동집약 경공업→자본집약 중화학→기술ㆍ지식ㆍ정보집약의 첨단산업→제조업 연계형 서비스산업으로 발전해 갔다.

일본의 경우 1970∼85년동안 제조업의 비중은 GNP 35.8%에서 30.2%의 비율을 유지하면서 제조업의 기술심화를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최대의 흑자국 위상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1인당 소득수준이 일본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은 일본보다 월등히 높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일본수준과 비슷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경제가 성장의 정상궤도로부터 크게 탈선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으로부터 생산된 제품이 있기에 수송ㆍ통신ㆍ금융ㆍ보험ㆍ광고ㆍ음식 숙박업 등의 서비스산업이 파생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인당 소득이 이제 3만달러대로 육박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조업은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새로운 상품을 값싸게 부단히 국제시장에 내어놓고 있다.

우리의 제조업이 위축되니 수출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10월중 무역적자는 81년 이후 최대폭을 기록하여 8억6천만달러를 나타냈으며 올해 전체 무역적자는 5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는 이제 86년부터 반짝하면서 벌어 놓았던 무역흑자를 탕진했다. 외채가 올해 10억달러나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사태로 고유가가 촉발하는 고물가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조업의 공동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인플레 경제체제 아래서 부동산이 최대의 고수익 투자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자금의 물꼬는 계속 제조업을 외면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근로자를 우대해야만…

국제시장에서 챔피언 상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기업가들의 사업의욕을 북돋워주는 정책을 이제 과감히 펴야 한다. 이 시대의 참된 애국자는 새로운 제품으로 국제경쟁에서 승리하여 외화를 벌어 오는 사람이다.

경제정책의 모든 초점은 제조업 부활로 모아져야 한다. 수출의 돌파구도 바로 제조업의 성장에서 가능하다. 자금의 물꼬가 제조업으로 가도록 모든 시책을 강구하고 제조업의 현장에서 일하는 기능 근로자들을 우대해야 된다.

제조업의 현장이 신바람나게 돌아가도록 각종유인정책과 함께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정치권이 하루빨리 앞장서야 한다.

우리경제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늙어가고 있는 경제를 이제 실기하지 말고 빨리 정상으로 복원하여야 한다. 경제의 조로화처럼 한나라의 운명을 퇴락의 길로 빠뜨리는 무서운 질병은 없다.
1990-11-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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