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외언내언

입력 1990-06-09 00:00
수정 1990-06-09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영운 모윤숙선생이 돌아갔다. 누린 나이 여든. 거목의 생애였다. 정객같은 궁량과 예술가다운 재능의 울창한 나무로 서서 한반도에 불어온 풍운을 수용하며 살아온 그의 생애는 찬사와 비난의 사이를 극단으로 오가야 하는 비범한 것이었다. ◆신생 대한민국이 유엔의 지원을 필요로 할때 「아름다운 여류시인」의 재능을 외교지략으로 헌납한 그. 인도대사 메논박사와의 로맨스로 남겨진 이 일화는 개화기를 식민지시대의 원한으로 보낸 우리 민족의 자학적 금욕주의에는 상찬을 받을 만한 것이 못될 수도 있었다. 항간의 범상한 입줄에 경칭없이 불리던 그 이름. ◆춘원에 대한 청순한 소녀 숭배자로,시에 입문하려는 거의 모든 한국인에게 서정의 세례를 준 「렌의 애가」로,동족 전쟁의 증오와 비극을 슬픈 감동으로 승화시켜주는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로,우리의 정서를 관류해온 그의 문학적 업적은 엄연한 봉우리가 되어 빛나고 있다. ◆한때,한국 문학인은 국제무대에 나가기만 하면 곤혹스럽고 난처한 처지에 번번이 몰리게 되는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그런 우리 처지를 원망하고,그렇게 만드는 주체를 비난할 수도 있었지만 밖에 나가서는 그런 방법으로 위로를 받기 어렵다. 나라가 모욕의 대상이 되는 일은 괴롭고 속상하다. 그런 처지에 직면했을때 영운은 그 유창한 화술과,언제 어디서라도 즉석 번역으로 운을 살려 읊을 수 있는 자작시 낭송으로,그 껄끄러운 우리의 처지를 모면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의 능력이 세계 문인을 움직이기도 한듯,바로 그런 분위기 속의 국제펜대회에서 그는 종신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늠름하게 압도해오는 그 기운찬 인품은 정자나무 그늘처럼 사람을 모으고,갖가지 일을 하게 했지만 말련에 찾아온 병마만은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고통속에서도 잊히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그도 이젠 영영 역사속으로 떠났다. 먼길,부디 잘 가시오.

1990-06-09 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동계올림픽 중계권의 JTBC 독점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폐막한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중계를 JTBC가 독점으로 방송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은 생각은?
1. 독점이어도 볼 사람은 본다.
2. 다양한 채널에서 중계를 했어야 했다.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