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의 길」한반도까지 뻗치길…
민족자결원칙에 입각한 접근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해온 서독은 미ㆍ영ㆍ불ㆍ소등 전승4대국과 주변 군소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급속한 통일을 기대하지는 않아 왔다. 그러나 서독은 동독내 사태가 급속하게 변화함에 따라 통일정책을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게 되어 콜총리는 작년 11월28일 국가연합(Confederation)형식의 10개항 통일안을 내놓았다.
한편 겐셔외무장관(자민당)은 콜총리(기민당)가 연립정부 구성 정당간의 협의없이 통일방안을 수립한데 대하여 「통일된 독일이 나토회원이 되고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현재의 동ㆍ서독지역에 계속 주둔한다」는 내용의 독자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미ㆍ소,기선잡기 바빠
통일논의는 선거를 앞두고 더욱 가속화되었다. 동독의 경우 3월18일 총선거에서 민주사회당(전사회주의통일당)과 「노이에스포룸」등이 집권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분당」에서 「통일」로 정책을 바꾸었으며 사민ㆍ기민ㆍ자민당도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통독논의에 열의를 보인다.서독에서도 국민의 주관심사가 통일문제로 되자 12월2일 실시될 예정인 12대총선거를 의식하여 각당이 통일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동독총선거를 서독의 지방선거와 같은 형태로 간주하여 동독정당들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주역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통독안을 제시하는등 기선을 잡으려 경쟁한다.
미ㆍ영ㆍ불ㆍ소 4대전승국은 독일의 통일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원칙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콜총리의 통일방안은 동구의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며 통독은 당장 논의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작년 12월6일 불ㆍ소 정상회담에서 발언하여 작년말까지도 「2개독일정책」을 고수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통독문제의 긴급성을 인식하고 금년 1월29일 모드로브 동독총리와의 회담에 이은 2월10일 콜 서독총리와의 회담에서 독일통일에 찬성한다는 정책상의 변화를 보였다. 이로써 통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제거된 셈이다. 소련은통독이 「신사고」에 입각한 「유럽공동의 집」구성계획에 부합되고 붕괴직전의 동독을 양보하는 대신 중립화를 통하여 독일전체를 자국에 일보접근시키는 결과를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급선회하였다.
미국은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진 독일문제에서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독에 적극 협조하고 또한 소련과의 경쟁적 입장에서 기선을 잡으려 서독의 통일노력을 적극 지원한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이 되고 체제도 자유민주화 된다는 전제아래 통일을 추진한다.
한편 프랑스 미테랑대통령은 『통일된 독일은 지나치게 강화되어 1차대전 발발직전인 1913년 상황에 도달한다』는 이유로 통독을 반대하였으나 민족자결에 의한 통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협조지도 정책전환을 하였다.
○양동맹기구가 걸림돌
영국의 대처총리는 최근까지 『10∼15년 후에야 통독문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었으나 통독추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대세에 동조하고 있다.
통독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분란이도사리고 있다. 첫째,통독은 4대전승국의 동의를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승국들은 독일조약에서 통독문제에 대한 결정권과 추진책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민족자결에 따라 양독이 통일합의에 도달하더라도 미ㆍ영ㆍ불ㆍ소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2차대전을 종결짓는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상황을 변경하는 통일은 원칙적으로 종전 네나라 결정사항인 것이다.
둘째,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문제이다. 몰타 미소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군사블록을 해체하는 것이 긴급한 사항이 아니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았고 고르바초프는 『2000년까지 군사동맹을 해체하자』는 과거의 제의를 의식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았고 부시도 유럽에서의 미군 주둔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이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할 것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어 중립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동독을 동맹권에서 서방측으로 해방시켜 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11개주(서독)가 나토에 속하고 5개주(동독)가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해야하므로 이것이 가장 큰 난제이다.
셋째,주변국들이 통독에 대해 원칙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독이 되면 7천6백만명의 인구(서독6천만,동독1천6백만)를 묶어 서독의 자본과 기술,동독의 숙련되고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2의 경제기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유럽 중심부에 강력한 국력을 갖는 독일의 부상에 위협을 느껴 현상태를 선호한다.
통독이 이루어지면 군사동맹체제가 실질적으로 붕괴되고 강력한 중부유럽이 형성되어 현존하는 유럽질서가 크게 변화할 것이다. 즉 유럽을 가르는 바르샤바 나토 군사동맹의 군사적 성격이 약화되고 정치적 기구로 변질될 것이다. 통독은 사실상 유럽분단의 종결을 의미하므로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달성이 가시화되어 소련의 적극적인 유럽사회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
○중부유럽 새질서 형성
한편 미소의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독일의 비중이 커지고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국가들의 구심점이 되어 중부유럽의 발언권이 강화된 새로운 국제질서가 조성될 것이다. 2차대전후 패전국으로서 독일이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오데르나이세 동독ㆍ폴란드 국경선은 이미 1950년 동독이,그리고 1972년 서독이 각각 인정한 바 있으나 통일된 후에 재론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현시점에서 통독가능성에 대하여 전망해 보면 동ㆍ서독은 경제면에서 통일을 먼저 달성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양독은 2월13일 통화단일화 원칙에 합의하고 경제통화동맹 창설을 위한 합동실무위원회를 발족시킴에 따라 경제면에서의 통일이 향후 수개월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독연방은행이 양국의 통화금융을 운영하고 하루 2천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서독으로 이주하여 붕괴위기에 처한 동독경제를 서독이 흡수하게 된다. 동ㆍ서독간 최초의 합의도 경제에 관한 베를린협정(1951년 9월 체결)이었던 경험을 고려할 때 경제적 통일이 정치적 통일을 유도할 것이다. 동독총선거에서 사민당(당수뵈메,명예당수브란트)의 압승이 예상되며 이 당은 국민의 대다수(여론조사 결과 75%)가 희망하는 통일추진을 주요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어 통일논의는 선거후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마침 2월13일 오타와 나토ㆍ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장관회의에서 미ㆍ소ㆍ영ㆍ불과 동ㆍ서독 6개국이 2단계의 통독방안에 합의하여 통독논의의 체계적인 추진이 제도화되었다. 이는 거쳐야할 과정과 순서를 명시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통독전망을 밝게 한다.
○경제통합이 정치견인
끝으로 독일의 통일은 전후 형성된 불합리한 상황의 해결이라는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대국의 협조의무를 상기시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또한 통독이 한반도 통일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북한을 대화에 응하게 하여 남북한간 접근을 촉진시킬 것이다. 북한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분단을 영구화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하지만 1972년 12월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1973년 9월 유엔에 동시가입하였으며 1974년 3월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한 동ㆍ서독이 통일을 이루는 일은 대화조차 거부하는 북한의 이론을 오류로 만든다.<본사 논평위원>
민족자결원칙에 입각한 접근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을 추구해온 서독은 미ㆍ영ㆍ불ㆍ소등 전승4대국과 주변 군소국가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급속한 통일을 기대하지는 않아 왔다. 그러나 서독은 동독내 사태가 급속하게 변화함에 따라 통일정책을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게 되어 콜총리는 작년 11월28일 국가연합(Confederation)형식의 10개항 통일안을 내놓았다.
한편 겐셔외무장관(자민당)은 콜총리(기민당)가 연립정부 구성 정당간의 협의없이 통일방안을 수립한데 대하여 「통일된 독일이 나토회원이 되고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현재의 동ㆍ서독지역에 계속 주둔한다」는 내용의 독자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미ㆍ소,기선잡기 바빠
통일논의는 선거를 앞두고 더욱 가속화되었다. 동독의 경우 3월18일 총선거에서 민주사회당(전사회주의통일당)과 「노이에스포룸」등이 집권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분당」에서 「통일」로 정책을 바꾸었으며 사민ㆍ기민ㆍ자민당도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통독논의에 열의를 보인다.서독에서도 국민의 주관심사가 통일문제로 되자 12월2일 실시될 예정인 12대총선거를 의식하여 각당이 통일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며 동독총선거를 서독의 지방선거와 같은 형태로 간주하여 동독정당들의 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주역이 되기 위하여 새로운 통독안을 제시하는등 기선을 잡으려 경쟁한다.
미ㆍ영ㆍ불ㆍ소 4대전승국은 독일의 통일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원칙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정책을 채택하였다.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콜총리의 통일방안은 동구의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며 통독은 당장 논의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작년 12월6일 불ㆍ소 정상회담에서 발언하여 작년말까지도 「2개독일정책」을 고수하였었다. 그러나 그는 통독문제의 긴급성을 인식하고 금년 1월29일 모드로브 동독총리와의 회담에 이은 2월10일 콜 서독총리와의 회담에서 독일통일에 찬성한다는 정책상의 변화를 보였다. 이로써 통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제거된 셈이다. 소련은통독이 「신사고」에 입각한 「유럽공동의 집」구성계획에 부합되고 붕괴직전의 동독을 양보하는 대신 중립화를 통하여 독일전체를 자국에 일보접근시키는 결과를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급선회하였다.
미국은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진 독일문제에서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독에 적극 협조하고 또한 소련과의 경쟁적 입장에서 기선을 잡으려 서독의 통일노력을 적극 지원한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이 되고 체제도 자유민주화 된다는 전제아래 통일을 추진한다.
한편 프랑스 미테랑대통령은 『통일된 독일은 지나치게 강화되어 1차대전 발발직전인 1913년 상황에 도달한다』는 이유로 통독을 반대하였으나 민족자결에 의한 통일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협조지도 정책전환을 하였다.
○양동맹기구가 걸림돌
영국의 대처총리는 최근까지 『10∼15년 후에야 통독문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했었으나 통독추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대세에 동조하고 있다.
통독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많은 문제점이 있으며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분란이도사리고 있다. 첫째,통독은 4대전승국의 동의를 반드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승국들은 독일조약에서 통독문제에 대한 결정권과 추진책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어 민족자결에 따라 양독이 통일합의에 도달하더라도 미ㆍ영ㆍ불ㆍ소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2차대전을 종결짓는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상황을 변경하는 통일은 원칙적으로 종전 네나라 결정사항인 것이다.
둘째,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문제이다. 몰타 미소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군사블록을 해체하는 것이 긴급한 사항이 아니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았고 고르바초프는 『2000년까지 군사동맹을 해체하자』는 과거의 제의를 의식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았고 부시도 유럽에서의 미군 주둔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이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할 것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어 중립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동독을 동맹권에서 서방측으로 해방시켜 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11개주(서독)가 나토에 속하고 5개주(동독)가 바르샤바기구에 잔류해야하므로 이것이 가장 큰 난제이다.
셋째,주변국들이 통독에 대해 원칙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독이 되면 7천6백만명의 인구(서독6천만,동독1천6백만)를 묶어 서독의 자본과 기술,동독의 숙련되고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2의 경제기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유럽 중심부에 강력한 국력을 갖는 독일의 부상에 위협을 느껴 현상태를 선호한다.
통독이 이루어지면 군사동맹체제가 실질적으로 붕괴되고 강력한 중부유럽이 형성되어 현존하는 유럽질서가 크게 변화할 것이다. 즉 유럽을 가르는 바르샤바 나토 군사동맹의 군사적 성격이 약화되고 정치적 기구로 변질될 것이다. 통독은 사실상 유럽분단의 종결을 의미하므로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달성이 가시화되어 소련의 적극적인 유럽사회 참여를 유도할 것이다.
○중부유럽 새질서 형성
한편 미소의 영향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독일의 비중이 커지고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국가들의 구심점이 되어 중부유럽의 발언권이 강화된 새로운 국제질서가 조성될 것이다. 2차대전후 패전국으로서 독일이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오데르나이세 동독ㆍ폴란드 국경선은 이미 1950년 동독이,그리고 1972년 서독이 각각 인정한 바 있으나 통일된 후에 재론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현시점에서 통독가능성에 대하여 전망해 보면 동ㆍ서독은 경제면에서 통일을 먼저 달성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양독은 2월13일 통화단일화 원칙에 합의하고 경제통화동맹 창설을 위한 합동실무위원회를 발족시킴에 따라 경제면에서의 통일이 향후 수개월안에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독연방은행이 양국의 통화금융을 운영하고 하루 2천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서독으로 이주하여 붕괴위기에 처한 동독경제를 서독이 흡수하게 된다. 동ㆍ서독간 최초의 합의도 경제에 관한 베를린협정(1951년 9월 체결)이었던 경험을 고려할 때 경제적 통일이 정치적 통일을 유도할 것이다. 동독총선거에서 사민당(당수뵈메,명예당수브란트)의 압승이 예상되며 이 당은 국민의 대다수(여론조사 결과 75%)가 희망하는 통일추진을 주요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어 통일논의는 선거후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마침 2월13일 오타와 나토ㆍ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장관회의에서 미ㆍ소ㆍ영ㆍ불과 동ㆍ서독 6개국이 2단계의 통독방안에 합의하여 통독논의의 체계적인 추진이 제도화되었다. 이는 거쳐야할 과정과 순서를 명시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통독전망을 밝게 한다.
○경제통합이 정치견인
끝으로 독일의 통일은 전후 형성된 불합리한 상황의 해결이라는 의미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대국의 협조의무를 상기시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또한 통독이 한반도 통일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북한을 대화에 응하게 하여 남북한간 접근을 촉진시킬 것이다. 북한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분단을 영구화하기 때문에 거부한다고 하지만 1972년 12월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1973년 9월 유엔에 동시가입하였으며 1974년 3월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한 동ㆍ서독이 통일을 이루는 일은 대화조차 거부하는 북한의 이론을 오류로 만든다.<본사 논평위원>
1990-03-1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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