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대(현 제주국제대) 시절 내야수로 뛰다 발목 골절상을 당한 이재우는 2000년 자신의 지명권을 가진 두산에 훈련 보조 및 기록원으로 입단했다. 당시 배터리 코치였던 김경문 현 NC 감독은 이재우의 가능성을 발견해 투수로 키웠고, 2005년부터는 핵심 불펜 요원으로 자리잡았다.
이재우는 2009년 팔꿈치 통증을 참고 공을 던졌지만 이듬해 탈이 났고 미국에서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를 받았다. 마운드에 다시 설 날을 꿈꿨지만 2011년 또다시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국내에서 재수술을 받았으나 선수 생명은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눈물겹도록 힘든 재활을 이겨내고 지난해 9월 그라운드에 되돌아 왔고, 올 시즌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5승을 거뒀다. 그리고 10월 28일 생애 최초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선발로 섰다.
5이닝 동안 삼진 8개를 낚으며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투수가 된 이재우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도 이런 날이 있구나 싶다”며 입을 열었다. 이재우는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다. 열심히 하니 하늘도 도와줬다. 오늘을 위해 지난 3년간 재활을 한 것 같다”고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어 “포수 양의지의 볼 배합이 마음에 들었다. 3회까지는 직구 위주로 가다 이후 변화구를 주문했는데 그대로 던졌더니 결과가 좋았다”고 공을 돌렸다.
이날 이재우는 최고 구속이 143㎞에 머물렀지만, 과감한 몸쪽 승부와 예리한 포크볼로 삼성 타선을 제압했다. 혼을 담은 85구를 던져 KS 영웅 중 한 명이 됐고,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이재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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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는 2009년 팔꿈치 통증을 참고 공을 던졌지만 이듬해 탈이 났고 미국에서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를 받았다. 마운드에 다시 설 날을 꿈꿨지만 2011년 또다시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국내에서 재수술을 받았으나 선수 생명은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눈물겹도록 힘든 재활을 이겨내고 지난해 9월 그라운드에 되돌아 왔고, 올 시즌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5승을 거뒀다. 그리고 10월 28일 생애 최초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선발로 섰다.
5이닝 동안 삼진 8개를 낚으며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승리투수가 된 이재우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제 인생에도 이런 날이 있구나 싶다”며 입을 열었다. 이재우는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다. 열심히 하니 하늘도 도와줬다. 오늘을 위해 지난 3년간 재활을 한 것 같다”고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어 “포수 양의지의 볼 배합이 마음에 들었다. 3회까지는 직구 위주로 가다 이후 변화구를 주문했는데 그대로 던졌더니 결과가 좋았다”고 공을 돌렸다.
이날 이재우는 최고 구속이 143㎞에 머물렀지만, 과감한 몸쪽 승부와 예리한 포크볼로 삼성 타선을 제압했다. 혼을 담은 85구를 던져 KS 영웅 중 한 명이 됐고,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2013-10-29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