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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 거목 ‘영원한 국수’ 김인 9단, 영원한 잠에 들다

한국바둑 거목 ‘영원한 국수’ 김인 9단, 영원한 잠에 들다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1-04-04 20:42
업데이트 2021-04-05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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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 9단
김인 9단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8세.

김 9단은 23세였던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을 꺾고 국수 타이틀을 쟁취했다.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로 당시 신문 1면에도 대서특필됐다.

194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 9단은 13세 때 바둑판을 안고 야간열차로 혼자 상경해 15세인 1958년 프로가 됐다. 1962년 6기 국수전에서 조 9단에게 도전했으나 1승1무3패로 패하고 나흘 뒤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김 9단이 또래 유망주를 상대로 80% 전후의 승률을 기록하자 일본에서는 ‘김죽림(金竹林) 시대’를 점치기도 했다. 한국, 일본, 대만 출신 유망주 김인,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린하이펑(林海峰)이 조만간 바둑계를 지배한다는 얘기였다.

1963년 11월 귀국한 김 9단은 이후 국수 6연패, 왕위 7연패, 패왕 7연패 등 국내 기전을 휩쓸었다. 1978년 13기 패왕전과 4기 기왕전에서 각각 조훈현 9단, 김희중 9단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은 이후 타이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목이 수려하고 기품 있는 김 9단의 대국 태도는 팬들을 매료시켰다. 김 9단은 상금과 대국료로 가난한 동료에게 밥과 술을 많이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9단은 2007년부터 고향 강진에서 ‘김인 국수배’를 개최해 아마추어와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로 출범한 대회는 2008년 국제 시니어 바둑대회로 격상됐다.

고인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행사가 열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2019년 10월 13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김 9단은 하늘에서 대회를 지켜보게 됐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021-04-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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