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대화가 유일한 ‘빛’… 보고 듣지 못해 고립된 시청장애인 1만명

손끝 대화가 유일한 ‘빛’… 보고 듣지 못해 고립된 시청장애인 1만명

장진복 기자
장진복 기자
입력 2023-12-25 00:54
수정 2023-12-25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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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켈러 학습지원센터 가 보니

장애 유형별 소통방법 달라 어려움
복지 순위도 밀려 전담기관 2곳뿐

문해·일상생활 훈련 등 맞춤 교육
직업재활훈련 통해 5명 취업 성과
“숨은이들 세상에 나오도록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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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이 직업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센터 제공
서울시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이 직업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센터 제공
“선천적으로 듣지 못했는데 13년 전부터는 앞까지 안 보여 답답했어요. 매일 집에서 멍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시청각장애인 김소영씨)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동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프로그램실.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자조모임에 참석한 10여명의 시청각장애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이들의 인사법은 ‘촉수어’. 한 사람이 손으로 수어를 하면 다른 사람이 그 손을 만지며 이해하는 방식이다.

자조모임이 열리는 내내 프로그램실은 고요했다. 누군가 앞에 마주 앉아도 시청각장애인들은 인기척을 느낄 수 없다. 센터 직원이 두 사람의 손을 맞잡게 하자 그제야 손끝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시청각장애인이 마주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이다. 선천적으로 시청각장애인이 된 경우, 청각장애인이 살다가 실명한 경우, 시각장애인이 실청한 경우 등 유형에 따라 그동안 써왔던 소통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우석 센터장은 “청각베이스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수어는 국어, 점자는 외국어가 된다”며 “소통이 어렵다 보니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통계 등에 따르면 전국 시청각장애인구는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서울시에는 1400여명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법과 제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15개 장애 유형에 시청각장애를 별도의 장애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시청각장애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어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복지 우선순위에서도 매번 밀린다.

헬렌 켈러의 스승인 설리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도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복지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전담기관을 설치·운영하도록 했지만 실제로 참여하는 곳은 서울시, 제주도 등에 불과하다.

서울시가 지원하고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는 문해 교육, 일상생활 훈련, 자조모임, 아동 맞춤형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센터의 일상생활훈련실에 들어서자 점자 스티커가 붙어 있는 냉장고, 세탁기, 정수기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가전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이곳에서 간단한 작동법을 익힌다. 비치된 냄비에는 500㎖씩 홈이 파여 있어 라면 등 간단한 요리를 연습할 수 있다.

지난 7월 문을 연 센터는 특히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직업재활훈련 등을 통해 5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시청각장애인 당사자인 손창환(49)씨는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1호 직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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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청각장애인이었던 김소영(56)씨는 예전에 운전, 옷수선 등의 일을 했지만 시력마저 잃게 되면서 그만뒀다. 센터에서 점자를 배운 뒤 취업에 성공해 현재 점자명함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센터 직원의 도움을 받아 소감을 묻자 그는 수어를 통해 “마음이 항상 답답하고 집에만 있는 것이 힘들었는데 취업을 하고 돈도 벌 수 있어서 기쁘다”고 전했다. 정 센터장은 “일상생활과 의사소통의 불편 등으로 숨어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3-12-2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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