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라’던 백기완 선생”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라’던 백기완 선생”

이슬기 기자
입력 2021-02-15 16:25
수정 2021-02-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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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 소식에 여성 정치인들 추모·회고 잇따라
권인숙 “부천서 성고문 규탄대회 열려다 감옥 갇혀”
심상정 “썩어 문드러진 세상, 뒤집어 엎으라던 분”
딸 백원담 “예순 두 해 동안 맏딸로, 사회운동의 선후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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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2019년 3월 1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림커피에서 열린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가운데)이 취재진 앞에 섰다. 왼쪽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오른쪽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나는 한 마디로 소개하면 됩니다. 나는 내 눈앞에서 마음에 안들면은 그냥 놔두지 않았어.”

2019년 3월 13일.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된 ‘버선발 이야기’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한 그의 평생은 부조리에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15일 투병 끝 별세한 그를 수많은 여성 정치인들도 기렸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천서 성고문 사건규탄대회를 여시려다 감옥에 갇히시기도 했다”며 “제가 경험한 사람 중 가장 특별한 연설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백 소장은 권 의원이 성고문 피해를 입었던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규탄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 일을 회상하며 권 의원은 “논리력, 선동력, 이야기하듯 엮어내는 구수한 문장력과 멋진 목소리가 엄청난 조화를 이루었고 87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왔을 때 많은 지지자와 함성을 모으셨다”며 조의를 표했다.

선생의 뒤를 이어 진보진영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그의 뜻을 기렸다. 심 의원은 페이스북에 “심상정이, 비틀거리지 말고 똑바로 가.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뒤집어엎어버리란 말이야!”라던 선생의 생전 호령을 적었다. 이어 “수많은 진보 정치인, 운동가, 지식인들이 선생의 둥지에서 태어나 진보정당의 초석이 되었다”고 썼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직 이사장을 지냈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요시위에 나섰던 백 소장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는 “수요시위에 참석하시고 김복동 할머니 떠나시던 날 빈소에 들러 할머니 명복 빌어주시며 함께 해주시던 모습들, 가슴에 찡하게 남아있다”며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는 대학로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에 들렀던 기억을 소환했다. 박 후보는 “저에게 ‘시원시원하고 단호해서 좋다’고 하셨던 선생님.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선생님 영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시를 바칩니다”라고 썼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가 백 소장이다.

선생의 맏딸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1979년 선생이 출간한 책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언급했다. 책에서 선생은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말을 타고 달리는 고구려의 여성상을 예로 들며 현모양처의 허상과 수동적 역할을 벗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여성이 될 것을 강조했다. 백 교수는 “1979년 딸에게 주는 편지를 책으로 엮어 평생을 살아가는 길라잡이를 일러주셨다”며 “예순 두 해 동안 아버님과 맏딸로, 사회운동의 선후배로, 끊임없는 긴장의 일상이 쉽지 않았지만 더없이 빛나고 참으로 벅찬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2019년 그날의 간담회에서 선생은 자기 소개에 이어 별안간 ‘미투’ 이야기를 꺼냈다. 소싯적 술을 먹다가도, 여성 옆에서 추태를 부리려는 남성들에 대한 일갈이었다. “‘야, 이 자식아. 술 먹고 술에 취하지. 왜 여성이라고 하는 특수한 사람에 취하려고 그래. 집어치워, 인마.’ 말 안들으면 술상 뒤집어 엎고 그랬어. 내가 그런 것도 실천인 줄 알았다니까. 내 젊은 날에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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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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