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일터 떠날 수밖에 없는 속사정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일터 떠날 수밖에 없는 속사정

이근아 기자
입력 2019-12-19 17:13
수정 2019-12-1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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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학숙 사건’ 피해자, 광주시의회에 진정서 접수
“정상적 업무 불가능···근무지 옮겨 달라”
전문가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위한 조치 필요”

“회사와 싸우면서 제가 설 곳이 사라졌습니다. 다른 곳으로 배치해 주세요.”

대표적인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인 ‘남도학숙 사건’의 피해자 A씨는 내년 1월 복직을 앞두고 최근 광주시의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서울에 진학한 지방 학생을 위한 향토기숙사인 남도학숙은 전남도와 광주시가 함께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A씨는 2차 피해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하다며 시도 산하 다른 기관으로 근무지를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A씨가 근무했던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학숙의 독방 사무실. 회사에서 당한 성희롱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한 뒤 A씨는 ‘유리감옥’과도 같은 독방에서 홀로 근무하는 식으로 2차 피해를 당했다.
A씨가 근무했던 서울 동작구 대방동 남도학숙의 독방 사무실. 회사에서 당한 성희롱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한 뒤 A씨는 ‘유리감옥’과도 같은 독방에서 홀로 근무하는 식으로 2차 피해를 당했다.
2014년 4월 남도학숙에 입사한 A씨는 직속 상사로부터 수차례 성희롱을 당했다. 참다못한 A씨는 이듬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고 성희롱 피해를 인정받았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사측은 A씨를 독방에서 혼자 일하게 했고 동료들은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A씨는 끈질기게 싸웠다. 주위의 손가락질에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가 떳떳하게 직장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5년에 걸친 사측과의 법정 다툼은 A씨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특히 20여 명의 사무실 동료 중 10여 명이 재판에서 A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일부 동료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모욕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성희롱 가해자는 이미 정년퇴직을 해 회사에 없지만 직장 내 괴롭힘 가해 동료들이 남아 A씨는 여전히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낀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들은 A씨와 같은 고통을 마주한다. 가해자는 직장에 남고 피해자가 일터를 떠나는 불합리한 관행이 여전하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2016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103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7%는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 등 불이익을 받았다. 피해자의 72%가 퇴사했고 이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57%가 문제 제기 이후 한 달 안에 직장을 관뒀다.

전문가들은 사측이 성폭력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장 내 성희롱 고발 이후 부당 해고를 당한 피해자가 낸 진정에 대해 “(해당 기업은) 피해자가 적대적 근무환경에 처하지 않도록 전보 조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김종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각 사업장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철저히 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확실한 인사 조치로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도학숙 관계자는 “(A씨의 처지는) 이해하지만 인사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요구”라면서 “해당 사안과 관계가 있는 직원들이 많이 퇴직했고 A씨가 복직한다면 동료들이 더 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광주시의회는 A씨의 진정서를 정식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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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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