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플러스] “옳은 일엔 목숨 걸고라도 나서야죠… 평생의 마음가짐입니다”

[인터뷰 플러스] “옳은 일엔 목숨 걸고라도 나서야죠… 평생의 마음가짐입니다”

입력 2018-12-17 22:06
수정 2018-12-1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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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 ‘25년 동장’ 정수선 선생의 삶

해방 정국과 새마을 운동, 지방의회의 출현. 학교 교과서 속에 나올 만한 이야기들이다. 정수선 선생은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살아내며 참여해 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1934년생으로 망우동 동래정씨 집성촌을 지키며 중랑구에서 25년 동안 6개 동의 동장을 역임했다. 동래정씨 승지공파 양원종중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지만 그가 살아온 시대의 변화 폭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다양한 자리에서 사회에 참여하며 봉사하는 정수선 선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말하는 그에게서 ‘연륜’이라는 말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편집자 주
중랑구 ‘25년 동장’ 정수선 선생
중랑구 ‘25년 동장’ 정수선 선생
→1934년생이시니 그야말로 역사의 산증인이십니다.

-제가 해방되던 해에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그때는 여기 망우동이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양주군이었습니다. 그때는 생필품이 많이 없을 때였죠.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학교에 다니던 기억이 나요. 나막신을 신다가 끈이 끊어지면 그걸 또 손 시리게 들고 오곤 했습니다. 그런 기억을 해보면 어릴 때 참 힘들었구나 생각이 드네요.

→이후에 1970년부터 망우동장으로 취임하셔서 동장으로 오래 일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사업을 꼽는다면.

-제가 할 일이 많았던 때이고, 사실 제가 자랑하고 싶은 일도 많이 있습니다. 1970년에 망우동장으로 제가 발령을 받기 전엔 여기 전기도 안 들어왔었어요. 그때 제가 농어촌 가설 자금을 융자받아서 전기를 끌어왔고, 그 이후 동장으로 취임하고 상수도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수돗물도 나오게 했지요. 또 면목2동장으로 일할 때는 82개 골목을 보도블록으로 정비하기도 했어요. 그때 예산이 없으니까 종로에서 공사하는 데에 쓰던 보도블록을 밤낮 사람을 보내 실어왔습니다. 새마을사업 중 하나였는데, 그렇게 보도블록 80만 장을 가져와서 골목에 깔았습니다.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일들을 하셨군요.

-그땐 그런 일들이 필요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사업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일은 따로 있습니다. 동장으로 와서 제일 먼저 시작했던 일이기도 한데,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이에요. 옛날 중랑천변에는 무허가 건물들이 많았는데 거기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학교를 못 다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아이들이 중학교를 못 갔던 거예요. 학교를 못 가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동사무소에 ‘새마을 학교’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3년 동안 중학교 과정을 가르쳐서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하고 고등학교를 보냈죠. 그게 제가 동장으로 한 첫 사업이었습니다.
종중의 오랜 숙원인 설학재공 할아버지 재실을 준공하고 후손들이 모여서 추모하고 있다.
종중의 오랜 숙원인 설학재공 할아버지 재실을 준공하고 후손들이 모여서 추모하고 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네요. 특히나 그 시절에 교육 복지를 동에서 생각하셨다는 게 놀랍습니다.

-저도 그 일에는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20명 넘는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제가 안 했으면 공부를 하지 못했을 거예요. 사실 그 친구들 중에 다시 만났던 건 두 명 정도밖에 없어서 어떻게들 지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도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뭔가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정수선 선생은 1970년에 망우동장으로 취임해 1995년 6월까지 25년 동안 동장으로 일했다. 면목2동, 망우1동, 중화2동 묵1동, 상봉2동장을 거치면서도 직책에 대한 욕심 없이 지역 생활을 살피는 동장으로만 지역민을 섬겼다. 제2대 중랑구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지방의회에서 25년 지역 행정 노하우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공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중랑구 해병사회단체 연합회, 평화대사협회 한유화 연구 협력회장으로 사회를 위한 일을 이어왔다.>

→25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역을 위해 일하셨다는 게 정말 대단합니다. 그 생활을 마감하실 때 아쉬움도 크셨을 것 같습니다.

-공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잖아요. 시키는 일만 하고, 안전하게 정해진 대로만 일한다는 불만이 있죠. 저는 내 마음껏 일했어요. 남이 안 하는 일을 많이 했고, 잘했다고 생각해요. 25년 동안 동장만 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저밖에 없습니다. 그저 아직 할 일이 더 있다는 생각에 욕심이 남았었을 뿐이죠. 누구나 어느 자리를 떠날 땐 아쉬움이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역과 사회를 깊이 생각하시는 성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자리에서 사회적인 활동을 해오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1961년에 지역에서 재건국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을 쭉 해왔어요. 그렇게 돌아보니 조금 남다른 성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일에서 남에게 지지 않으려 하고, 정의에 있어서는 생명을 바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옳은 일이면 나서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어요.

조상의 뜻을 지켜온 이의 당부

→망우동 정 씨 집성촌이 몇 차례 화제에 오른 적 있습니다. 동래정씨 승지공파 양원종중 회장을 지내신 바 있으신데, ‘정 씨 집성촌’에 대해 조금 말씀해주시죠.

-저희 선조 할아버지께서 망우동에 오신 것이 1395년입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여기에 산 지가 620년이 넘었죠. 저는 16대손입니다. 저희 선조이신 정구 할아버지께서 고려 말에 좌간의 대부셨어요. 태조임금이 조선을 세우신 이후 공신인 할아버지께 이 일대 토지를 하사하셨고, 그때부터 동네가 ‘정서방네’라고 불려왔습니다. 현재까지 25가구가 남아서 여기 살고 있습니다.

<정수선 선생의 말처럼 망우동 동래정씨 집성촌을 이룬 이들은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의 후손들이다. 망우동은 태조와 인연이 깊은 지역인데, ‘망우동’이라는 이름의 유래 중에도 태조가 한 말에 기인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태조가 자신이 묻힐 명당을 정하고 오는 길에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겠노라”(於斯吾憂忘矣)라고 한 데에서 ‘망우’(忘憂·근심을 잊음)라는 지명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 우물물을 마신 뒤 물맛을 칭찬해 양원리(養源里)가 됐다고도 한다.>

→서울 안에 25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에는 40세대가 넘었다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1971년에 그린벨트가 발표되면서 내 땅을 가지고도 집을 못 짓게 됐으니까 땅값도 떨어지고…. 결혼하면서 나가기도 하면서 줄어들었습니다.

→요즘은 가문이 모이는 일이 많지 않은데, 모임이 잘 이뤄지나요.

-비교적 많이 모이는 편입니다. 종중 정기총회를 하면 설학재공 할아버지 편으로만 종친들이 한 300명 모이고, 그 아래로 중추공 150명 정도 모이고요. 전국적으로 나가 있는 건 40만 명이 넘습니다. 자손이 전체적으로는 40만 정도 되는데, 여기 양원리에 살거나 제사 지내러 오는 건 300명 정도입니다. 제가 어떤 역할을 했다기보다는 다들 부모를 섬기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기에 유지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 대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죠. 저는 이 부분이 참 안타깝습니다. 부모가 없으면 자식이 어디서 태어났겠습니까. 부모를 생각하지 않고, 조상을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만 것 같아요.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켜보셨고, 또 현실로 참여해 오신 입장에서 지금의 사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끝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젊은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우선 어른을 섬길 줄 알고, 친구를 마음으로 믿고, 올바른 일에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는 마음을 가지길 당부하고 싶어요. 국가의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있지 않겠습니까. 어른을 섬기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세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교육이 부족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가정교육·인성교육이 필요합니다. 정부에도, 정치하는 분들에게도 꼭 이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인성교육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장태용 서울시의원, 한산초 ‘청소년 의회아카데미’ 참석… “우리 동네를 바꾸는 것이 시의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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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2018-12-18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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