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만둔 버스기사 왜 오늘 재입사했을까

어제 그만둔 버스기사 왜 오늘 재입사했을까

조용철 기자
입력 2016-08-14 22:30
수정 2016-08-1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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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정산한다며 사표 강요…서울 시내버스 회사들 ‘꼼수’

재입사하면 1호봉 월급 지급
“인건비 줄여 市인센티브 챙겨”
10여곳 운전기사들 소송 준비


서울의 시내버스업체 B사에 2003년 11월 입사해 운전기사로 일하던 김모(48)씨는 2008년 5월 31일자로 돌연 ‘퇴사자’ 신분이 됐다. 회사 측이 퇴직금 중간정산을 요구하며 사직서 작성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기사들을 전부 불러 놓고 장기근속자가 많아 회사 재정이 어렵다고 말하더라고요. 사직서를 쓰지 않으면 개별 면담을 한다는데 압박을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회사는 일부 기사에게는 정년이 끝나면 1년씩 계약을 갱신하는 촉탁직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결국 김씨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물론 퇴직금 정산을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었다. 퇴사자가 된 지 하루 만에 입사원서가 받아들여지고 똑같은 노선, 하루 전에 몰던 버스로 운행을 재개한 것도 김씨가 사실상 계속 근로를 한 증거였다. 그러나 2008년 6월 월급표를 받아 든 김씨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신규 입사자로 처리돼 1호봉 월급이 찍혀 있었습니다. 연차나 상여금도 모두 삭감이 됐고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결국 김씨는 올해 5월 고용노동부에 임금 체불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B사 관계자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권유한 것은 맞지만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이뤄졌다”면서 “재입사 후 임금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작성됐다”고 밝혔다. B사는 430여명의 기사를 거느리고 총 13개 노선을 운영 중인 중견업체다.

김씨의 사례처럼 퇴직금 중간정산 제도를 악용해 버스기사들의 임금을 축소 지급하는 부당 노동 행위가 버스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 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고를 저지른 기사에게 징계 대신 퇴직 후 재입사를 권하는 경우와 같은 논리”라며 “재입사를 빌미로 호봉을 깎는 것은 버스회사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쓰는 꼼수”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2004년 준공영제를 도입한 뒤로 버스기사의 임금은 서울시에서 지급된다. 그런데도 이러한 ‘퇴직 후 재입사’라는 부당 노동 행위는 끊이질 않고 있다. 회사 측이 부담해야 하는 퇴직 적립금마저 줄이기 위해 이 같은 꼼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도 “급여와 달리 퇴직금은 회사가 적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근속 연수를 줄이면 그만큼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임금 지급을 줄여 서울시의 ‘시내버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뒤 인센티브를 챙기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인건비를 줄였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서울시는 시내버스 재정 지원 중 인건비가 50~60%를 차지하는 까닭에 인건비 부문을 업체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같은 문제로 소송을 벌인 또 다른 버스업체 ‘한성운수’가 지난 3월 대법원으로부터 “퇴직금 정산자에 대해 계속 근로를 인정하고 호봉의 차액분을 지급하라”는 최종 판결을 받으면서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회사 측 상고를 모두 기각한 가운데 1, 2심 재판부는 “비록 사직서가 제출되긴 했으나 그것은 실제 사직 의사가 아니라 중간정산을 받겠다는 의사로 회사 측과 합의된 형식적인 제출에 불과하다”면서 “사직서 제출은 비진의표시로 무효”라고 설명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강호민 변호사는 “회사 쪽 인사 담당자가 서울시 평가를 위해 중간정산 절차를 빌린 퇴직을 실시했다고 실토한 것이 결정적 진술이었다”며 “사직 자체가 무효인 만큼 호봉과 연차를 재조정하라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서울시내 10여개 버스업체 운전기사들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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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6-08-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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