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터미널’ 주인공 1년3개월 만에 정식 난민 신청
아프리카인 A(24)는 내전이 반복되던 고국을 도망치듯 떠나 2013년 11월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 즉시 출입국관리소에 난민신청서를 냈지만 우리 당국은 “난민 신청 사유가 부족하다”며 입국을 불허했고, 그를 태우고 온 항공사에 송환 지시를 내렸다.A는 입대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송환을 거부했다. 또 ‘송환대기실’에 머물며 6개월간 지루한 법적 투쟁을 이어갔다. 끼니는 송환대기실에서 제공하는 치킨버거와 콜라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의 슬픈 사연은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귀국할 수도 미국에 입국할 수도 없게 된 주인공이 뉴욕 JFK공항 환승구역에서 9개월 동안 지내며 벌어진 일을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4년 영화 ‘터미널’을 연상시켜 ‘한국판 터미널’로도 불린다.
“형제·자매를 죽이는데 이용되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며 강제송환을 거부하던 A에게 마침내 ‘빛’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A는 송환대기실에 머물며 가까스로 변호사를 선임해 그동안 3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송환대기실에서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인신보호 청구소송’, 변호사를 접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가처분신청, 정식으로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행정소송 등이다.
지난해 4월 인천지법은 대기실 수용이 법적 근거 없는 위법한 수용이라며 그의 손을 들어줬고, 이후 입국이 허용됐다. 며칠 뒤에는 대기실 내 난민 신청자의 변호인 접견권을 허가하는 헌법재판소의 가처분 결정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A는 정식으로 난민 인정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A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장을 상대로 낸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지난 달 10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A에게 최소한 심사 기회는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의 진술에 다소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난민 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심사에 회부되더라도 난민 신청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며 사실조사를 거쳐 불인정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의 심리적 불안정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 판결은 출입국 당국이 상고를 포기해 확정됐고, A는 지난달 10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지 1년 3개월 만에 정식으로 난민 인정 심사를 신청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2015-03-09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