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생 20년 영욕
정치인 노무현의 인생은 ‘풍운아’로 요약할 수 있다.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그대로 적용된다. 1988년 국회 입성 과정부터 그랬다. 13대 총선에서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 의해 재야인사 영입 사례로 발탁됐다. 이어 같은해 ‘5공 청문회’에서 국민적 ‘스타’로 발돋움했다.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 발탁은 새로운 전기로 작용했다. 대권 도전의 중요한 발판이기도 했다. “정치인 집단을 조직화하고 세력으로 엮어 이끌어 나가는 조직적 리더십을 한번도 실험해 보지 않았다.”고 스스로 고백했듯, 약점을 보완하는 기간이었다.
2001년 3월 장관직을 떠난 뒤 본격적인 대선 후보경선 준비에 나선다. 변변한 조직도 없었지만 ‘국민참여 경선’에 힘입어 ‘이인제 대세론’을 극복했다. 몇 차례 말 실수로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지지도 하락을 경험했지만 월드컵 축구 4강 열기에 힘입어 상승세를 탔던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 대권을 거머쥐었다. 제16대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는 등 정치적 굴곡은 계속됐다.
그의 20년 정치 인생은 ‘충돌’과 ‘도전’의 역사였다. ‘도덕성’은 힘의 근원이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성장기와 자수성가형 인생 스토리는 ‘못가진 자’에 위로를 주며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했다. 대통령 재임기간에도 이 두가지는 노무현 정부를 떠받치는 기둥 노릇을 했다. 향후 판결 내용에 따라 자연인 노무현은 그에 합당한 권리를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과 대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인으로서의 기반은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의 최선은 대의(大義)를 따르는 것이며, 차선이 대세(大勢)’라고 하던 정치인 노무현은 이제 그 둘을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내려 놓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2009-05-0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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