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일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墓之·75)가 찍은 70년대 초 서울 청계천과 천변 주민들의 사진이 공개됐다. 청계천 하류 판자촌 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880여점의 사진은 서울시에 기증되어 13일부터 23일까지 성동구 마장동 청계천문화관에서 전시된다.
60~70년대 서울 청계천에 즐비하던 판잣집은 가난한 도시서민의 생활단면이다.
도시 근대화에 밀려난 청계천 판자촌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살곶이 다리 부근의 소녀. 멀리 한양대부속병원의 모습이 이채롭다.
청계활빈교회. 청계천 빈민들은 교회를 통해서 절망을 개척하여 희망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상수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청계천 주민들. 그래도 펌프로 끌어올린 지하수가 사진속 모녀에게는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청계천변 판자촌의 한 개척교회에서 주민이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다.
판잣집 벽면에 붙일 종이를 말리는 모습. 신문지가 주류였던 당시 형편에 비하면 고급이다.
‘춘자의 사랑이야기’라는 극장포스터. 당시 청계천과 잘 어울리는 문화코드이다.
60~70년대 서울 청계천에 즐비하던 판잣집은 가난한 도시서민의 생활단면이다.
도시 근대화에 밀려난 청계천 판자촌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살곶이 다리 부근의 소녀. 멀리 한양대부속병원의 모습이 이채롭다.
청계활빈교회. 청계천 빈민들은 교회를 통해서 절망을 개척하여 희망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상수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청계천 주민들. 그래도 펌프로 끌어올린 지하수가 사진속 모녀에게는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청계천변 판자촌의 한 개척교회에서 주민이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다.
판잣집 벽면에 붙일 종이를 말리는 모습. 신문지가 주류였던 당시 형편에 비하면 고급이다.
‘춘자의 사랑이야기’라는 극장포스터. 당시 청계천과 잘 어울리는 문화코드이다.
2006-04-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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