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중진 차출론, 책임론으로 불똥 튈라

與 중진 차출론, 책임론으로 불똥 튈라

입력 2014-02-06 00:00
수정 2014-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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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대권·원내대표 등 눈독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내부에서 제기된 중진 ‘차출론’이 ‘책임론’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차출 대상으로 거명된 인물들이 불출마한 상황에서 해당 지역이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 모든 책임을 거명된 당사자가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까 전전긍긍하며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차출론은 지방선거 출마 후보 물색 과정에서 빚어진 ‘인물난’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올해 초부터 불거졌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인지도가 높은 ‘필승 후보’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서울시장 후보에 7선의 정몽준 의원, 경기지사 후보에 5선의 남경필 의원, 인천시장 후보에 5선의 황우여 대표와 재선의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거론됐다. 또 충남지사 후보에 6선의 이인제 의원, 충북지사 후보에 3선의 정우택 최고위원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이들에겐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출마 시 당선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모두 출마를 거부하고 있으며 대부분 마음을 딴 곳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정 의원은 차기 대권, 남 의원은 차기 원내대표, 황 대표는 국회의장, 이 의원은 당권에 더 뜻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5일 “이들이 고약한 프레임에 갇혔다”고 설명했다. 선거에서 차출론이 제기된 지역을 야권에 내주면 그 책임론이 이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고 향후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선거 분위기가 최고조로 무르익는 5월에 그들의 ‘대타’로 출마한 후보가 지지율에서 열세를 면치 못한다면 같은 시기에 원내대표, 국회의장 선거에 뛰어든 이들을 놓고 동료 의원들이 ‘선당후사’(先黨後私)가 아님을 지적하며 표를 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책임론’은 8월쯤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당권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차출론은 ‘살생부’에 비유된다. 지방선거 출마 여부에 따라 자칫 이들의 정치적 생명까지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번지는 형국이다.

윤수혁 서울시의원, ‘제2회 대한민국 전통예술 대제전’ 축사… “무대를 완성하는 건 결국 객석”

서울시의회 윤수혁 의원(국민의힘·중구 제2선거구)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개최된 ‘제2회 대한민국 전통예술 대제전’에 자리를 함께해 축사를 건네고, 무대를 일군 예술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날 축사에서는 오랜 배우 활동을 통해 느낀 무대와 관객의 관계를 소개하며 공연을 함께 완성하는 관객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가위에 만나는 전통예술의 멋과 흥’이라는 슬로건 아래 펼쳐진 이번 대제전은 (사)성창순판소리보존회가 주최·주관을 맡고 서울특별시가 후원에 나섰다. ‘2026 서울시 민간 국악행사 지원사업’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행사는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서 전석 초대 방식으로 관객과 만났다. 축사에서는 “한가위의 넉넉한 여운 속에 우리 소리와 가락을 만나는 자리, 제2회 대한민국 전통예술 대제전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행사 관계자와 예술인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2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대를 완성하는 것은 결국 객석이라는 사실”이라며 관객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판소리에서 ‘얼씨구!’ 한마디가 소리꾼의 소리를 살리듯, 여러분의 박수가 예술인들께 가장 큰 힘이 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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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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