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 39세때 지명… 2인자 지지기반 확고, 김정운 - 5개월새 속전속결·권력갈등에 노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정운이 후계자로 확실시되는 것으로 정보당국도 파악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운의 후계과정에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뭘까.김 위원장은 1961년 노동당에 입당해 선전선동부, 조직지도부에서 활동하면서 경쟁자들을 숙청해 나갔다. 권력승계 작업은 1971년 김일성 주석이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사노청) 6차 연설에서 권력세습 의사를 밝히며 시작됐다.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39세.
김정일 위원장은 당 중앙위 정치위원에 임명된 1974년 사실상 후계자가 됐다. 공식 지명은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당의 정치국원이자 당 비서국의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당내 서열 2위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충해 나가는 방식으로 권력을 승계 받았다. 김정일은 이 과정에서 ‘수령인 김일성의 혁명 전통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일’이라는 혁명계승 후계자론도 만들었다.
김 위원장과 아들 정운은 혈통에 의한 권력 세습 및 후계자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후계자 지명까지의 절차 및 과정, 속도 등은 다르다. 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됐던 1970년대에는 북한의 경제사정이 비교적 괜찮았다. 김일성 부자에 대한 북한 인민과 권력 엘리트들의 충성도가 높았던 편이다.
때문에 2대 세습에 대한 북한 내 반감 및 권력 투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상황은 과거와는 다르다.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됐을 때에 비해 체제 위기가 심화됐다. 북한 주민들의 살림살이도 매우 나빠졌다.
김 위원장의 아들 3명을 중심으로 후계자로 만들려는 권력 그룹도 나눠져 있다. 이러한 권력 갈등 탓에 김 위원장은 지난 2005년 권력 후계 구도 조기 마련안을 건의받았으나 권력 분열 양상을 낳을 수 있다는 이유로 논의를 중단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해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권력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올 1월 정운의 25회 생일에 그를 후계자로 내정했다는 교시가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비밀리에 내려갔다. 이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국방위원 겸임)을 중심으로 국방위가 후계구도 구축을 은밀하게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정운의 후계자 지명 작업이 최근 5개월 사이에 속전속결로 진행된 셈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2009-06-0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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