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으니 아이는 포기… 나를 위해 ‘플렉스’

집 없으니 아이는 포기… 나를 위해 ‘플렉스’

명희진 기자
입력 2020-07-07 23:52
수정 2020-07-08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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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진·김희리 기자의 아무이슈] 열심히 살아도 먼 내 집… 한숨 쉬는 ‘밀레니얼 세대’

‘이전 세대보다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낭비적이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1981~1996년 출생)를 바라보는 세상의 통념이다.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온갖 지원을 받고도 명품백, 고급 디저트 등에 탐닉하며 집 한 채 마련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절실함’이 부족한 세대라는 지적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플렉스’(Flex·사치성 소비를 과시하는 문화)하는 이유는 정말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기 때문’일까.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꺼리는 이유가 과연 ‘이전 세대보다 이기적이기 때문’일까. 가장 스마트하면서도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역사상 첫 세대. 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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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울시내 한 백화점의 명품 판매 행사장.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보상 심리에서 과시적 소비를 한다는 해설도 있다. 뉴스1
지난달 25일 서울시내 한 백화점의 명품 판매 행사장.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보상 심리에서 과시적 소비를 한다는 해설도 있다.
뉴스1
결혼 2년차 회사원 김모(32·여)씨는 내년 출산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그는 “30대 직장인이 서울에 집을 사려면 43년 걸린다는 뉴스를 봤다”면서 “내가 부모에게 받은 만큼 내 아이에게 해 줄 수가 없으니 진지하게 딩크(Double Income No Kids·자녀를 두지 않은 맞벌이 부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결혼 3년차 회사원 서모(35)씨도 같은 생각이다. “딩크로 살아야 할지, 이왕 결혼했으니 아이를 낳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이달 초 첫아이를 출산한 회사원 박모(32)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결혼할 때 부모님이 보태준 돈을 갚겠다 했던 말은 공수표가 될 듯하다”면서 “부모 세대는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림을 시작했다고들 혀를 차시는데, 우리 세대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부모 세대처럼 해피엔드일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부모 도움으로 집을 장만한 자신은 행운아라고 했다.

비혼인 회사원 이모(34)씨는 만 34세 미혼 회사원이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소외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신혼부부 대출, 청년 대출, 임대주택 등 지원책이 많지만 만 34세 이후 미혼 회사원에 대한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면서 “나라를 위해 결혼하고 애도 낳고 세금도 더 내야 하는데 미적거리고 있으니 널 도와줄 정책 따윈 없다는 말을 정부가 은연중에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라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열심히 일도 하는데 앞이 잘 안 보인다. 도대체 뭘 더 열심히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결혼과 출산을 의무로 보는 사회적 관점에서 자신들이 ‘철없는 애들’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비혼인 회사원 송모(33·여)씨는 “어렸을 땐 뭐든 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 나를 포기하면서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지는 않다”면서 “결혼 말고 동거 정도 하면 어떨까 진지하게 고민한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원하는 이상치가 어느 세대보다 높다. 부모 세대의 전폭적인 지원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배우고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부딪힌 현실은 다르다. 소셜미디어가 활발한 환경에서 시시각각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것도 ‘밀레니얼 좌절’의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는 “경제성장기의 부모 세대에게서 받았던 생활수준을 밀레니얼 세대는 자식들에게 제공하기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개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니 불행을 느낄 요인이 더 많아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과시적 소비에 몰입하는 배경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숨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차곡차곡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게 불가능해진 현실이다 보니 당장 손에 잡히는 것,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지갑을 연다”면서 “불확실한 시대를 견디는 나 자신에게 이 정도도 못 해 주나 하는 보상 심리도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서구 밀레니얼 세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모기지론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이 늘었다는 조사도 이어진다. 이런 세태를 배경 삼아 고개 드는 것이 이른바 ‘밀레니얼 사회주의’다. 스타벅스, 아마존 등 대기업의 상품을 거부하면서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요구하는 신개념 문화 운동이다. 이 교수는 “기성세대의 문화에 반기를 든 밀레니얼 세대의 좌절이 투영됐다는 점에서 플렉스 문화와 궤를 같이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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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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