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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50년] 다시 불붙은 역사 전쟁… 20일 출범 ‘한국현대사학회’ 해부

[5·16 50년] 다시 불붙은 역사 전쟁… 20일 출범 ‘한국현대사학회’ 해부

입력 2011-05-14 00:00
업데이트 2011-05-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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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편향 벗어난 연구” vs “우익 ‘교과서포럼’ 복제판”

다시 역사 전쟁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관계나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 간 갈등 얘기가 아니다. 역사 교과서를 매개로 벌어지는 한국 내부의 ‘전쟁’이다. 2005년 한 차례 맞붙었으니 이번엔 2차전이다. 오는 20일 내로라하는 학자들로 짜여진 한국현대사학회가 출범한다.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겠다는 게 출사표다. 새 역사 교과서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출범일에 맞춰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에서 첫 학술대회를 연다. 주제는 ‘한국의 현대사학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기존 역사 교과서 진영에서는 새 현대사학회가 6년 전의 ‘교과서포럼’ 복제판이라고 비판한다. 새 얼굴을 몇몇 수혈했으되 구성원들도 대부분 ‘겹치기 출연’이라는 지적이다. 교과서포럼은 2005년 권철현(현 주일대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기존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공격한 뒤 우익 인사들이 만든 단체다.

기존 역사 교과서 진영은 16일 서울 흥사단 강당에서 ‘한국사 교육과정 논란과 역사교육 정상화’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현대사학회의 20일 학술대회를 겨냥한 맞불 성격이다. 이래저래 역사 전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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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교과서 검증 목표



한국현대사학회 초대 회장을 맡은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는 “그간 한국사 전공자들이 너무 이념적으로 편향돼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국가 정체성에 혼돈을 가져왔다.”면서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한 이들이 많아 학회 구성이 손쉽게, 빨리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정권 때 만들어진 역사 교과서가 좌파들의 자학사관(자기학대적 역사관)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한다고 공격했던 교과서포럼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권 회장은 “첫 학술대회를 마무리하는 대로 교과서 편찬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3년 9차 교육과정 때부터 중고등학생용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 신청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진용도 화려하다. 학회에 명단을 올린 교수(명예교수 포함)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안병직·이인호·박효종·이영훈·전상인(이상 서울대), 유영익·유석춘(이상 연세대), 김영호(성신여대), 강규형(명지대)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학자들이다. 교과서포럼에도 고문이나 정회원 등의 직함으로 모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100여명이 넘는 구성원 가운데 한국 현대사 전공자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권 회장은 “중요한 것은 학문적 다양성과 성실성”이라면서 “우리 학회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확장했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익 학자들뿐 아니라 중도파까지 끌어안았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교과서포럼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권 회장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공격하는 분들도) 다 함께 참여해 당당하게 논쟁했으면 좋겠다.”고 응수했다.

●주진오 교수, “교과서포럼 회전문 인사”

기존 역사 교과서 진영은 현대사학회의 ‘출사표’와 달리 정체성에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교과서포럼, 나아가 일본 역사 왜곡의 주범인 ‘새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새역모)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며 냉소적이다.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37명을 모아 ‘한국사교과서집필자협의회’를 구성한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학문적으로 연구하겠다는 것은 반길 일”이라면서도 “출범 과정이 교과서포럼 닮은꼴이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극단적 우파 학자나 정치인이 앞장서 얘기하면 이를 토대로 보수 여론을 조성한 뒤 교과서 문제로 옮겨 가는 행태가 똑같다는 지적이다.

주 교수는 “안병직, 유영익, 이인호, 김종석, 전상인, 차상철 교수 등 현대사학회 고문이나 발기인 멤버들은 대부분 교과서포럼에 얼굴을 내밀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2007 교육과정에 맞춰 2년 동안 만든 역사 교과서를 한순간에 뒤집어 한달 만에 새 교과서를 내놓으라고 앞장서 목소리 높였던 주체도 현 정권과 교과서포럼이었다.”고 비판했다.

‘현대사’를 간판으로 내걸었음에도 정작 현대사 전공자가 드문 것도 교과서포럼과 닮은꼴이라고 주 교수는 꼬집었다.

그는 “기존 역사 교과서 검정 때 근현대사 전공자들은 좌편향이라는 이유로 검정위원에서 배제하고 서양사 전공자들을 무리하게 끼워 넣었다.”면서 “결국 검정할 능력이 안 되니까 국사편찬위원회에 떠맡긴 게 그들의 서글픈 현 주소”라고 진단했다.

●현대사학회는 촛불시위 트라우마 산물?

현대사학회의 출범을 ‘촛불시위 트라우마’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광우병 파동 등 촛불시위에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것을 보고 보수 진영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 원인을 추적해 가다 보니 교과서가 문제라는 진단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교수는 교과서포럼의 집중 포화를 받았던 금성사 교과서 집필자로, 현재 교과서 수정 문제를 두고 교육부와 민사·행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김 교수는 새 교과서 제작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현대사학회에 대해 “역사학이 역사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라거나 비교사적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고 전제한 뒤 “다만 기세등등했던 교과서포럼이 왜 사실상 활동 중단에 들어갔는지, 그들의 주장을 옹호했던 목소리가 시안 공개 이후 왜 눈에 띄게 잦아들었는지 한번쯤 곱씹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자학사관 탈피를 내걸었던 교과서포럼은 2006년 11월 자체 역사 교과서 시안을 공개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중심에 둔 역사 해석이 두드러졌다. 예컨대 5·16은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10월 유신은 ‘국가의 자원 동원과 집행 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로 각각 규정했다. 아울러 4·19혁명은 ‘학생운동’으로 격하시켰다. 4·19 관련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교과서포럼 공동대표였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련 심포지엄에서 4·19 단체 회원들과 드잡이하는 불상사까지 연출했다. 앞서 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를 가리켜 ‘상업 공창’이라고 했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교과서포럼 측은 “시안일 뿐”이라며 수습에 나섰으나 역풍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5-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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