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00권 읽고 5년노숙 탈출

책 100권 읽고 5년노숙 탈출

입력 2009-12-24 12:00
수정 2009-12-2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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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2009 희망을 만든 사람들] 前 노숙인 배동효씨 “이제 이웃봉사 희망가 불러요”

“경제적으로 실패했다고 인생 낙오자는 아니죠. 모자를 눌러쓰고 스스로 패배자인 양 행동하면 안 돼요.”

5년 세월이었다. 차디찬 바닥에 몸을 가눈 채 술과 도박에 빠져 살던 그를 사람들은 ‘노숙자’라 불렀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벗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820여일. 밤마다 엄습해온 한기(寒氣)는 참을 수 있었지만 자신이 ‘버리고’ 또 ‘버림받은’ 가족들 생각에 매일 술에 의지했다. 배 아파 난 아들과 스스로 연을 끊은 어머니, 남이 돼버린 아내를 생각할 때마다 맨 정신으론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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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활 노숙인들의 봉사모임인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스스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풍찬노숙을 택했던 노숙인들이 매달 수입에서 5000원씩을 나눠 같은 처지의 노숙인들을 돕고 있다. 오른쪽 아래가 배동효씨.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자활 노숙인들의 봉사모임인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 스스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풍찬노숙을 택했던 노숙인들이 매달 수입에서 5000원씩을 나눠 같은 처지의 노숙인들을 돕고 있다. 오른쪽 아래가 배동효씨.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요양보호사 1급자격증 획득

배동효(45)씨는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2004년 겨울 차디찬 길바닥으로 내몰렸다. 부산의 냉동기 제조업체 사장에서 주민등록증조차 가질 수 없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순간이다.

손 벌릴 곳 없던 그는 이듬해 봄 열차를 타고 무작정 서울역으로 올라와 노숙을 택했다. 이후의 삶은 배씨의 표현대로 ‘사회적으로 죽고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던’ 시간이었다.

서울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등을 전전했다. 역전 노숙자들과 주먹다짐을 벌였고, 폐병으로 생사의 경계를 오갔다.

오랜 노숙생활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게으름’이란 친구를 불러왔다. 배씨는 “수중에 돈이 생기면 술과 도박에 의지하곤 했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생각에 노숙자들은 쉽게 도박에 빠진다.”고 전했다. 쪽방생활과 시설입소, 거리노숙을 반복하던 배씨에게 변화가 온 것은 지난 4월. 서울 동자동의 한 노숙자 상담보호센터를 찾으면서부터다. 이곳 사회복지사들은 노숙자들의 머릿수만 채워 정부 보조금을 타려던 이전 시설의 관리인들과 달랐다.

신용불량자인 배씨에게 우선 서울역 주변 노숙인을 씻기는 일을 맡겼고, 이를 통해 고정적 수입을 갖도록 했다. 보호센터의 음악심리치료는 자아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배씨는 “첫 시간에 죽어라 탬버린만 두드리던 내게 울화에 찌든 자화상을 발견했다. 이후 남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노숙인 20여명과 나눔활동

여전히 술과 도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그에게 인문학 강좌는 ‘패자부활’의 마침표였다. 철학과 시 창작을 배우며 존재의 가치를 배웠다. 배씨는 “적어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는 불결한 노숙자이기 전에 소중한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이후 6개월여 만에 그가 독파한 책은 100여권. 요양보호사 1급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매달 받는 39만원의 월급 중 5000원을 갹출해 자활 노숙인 20여명과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란 봉사단을 꾸리고 있다.”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앞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희망가를 부르겠다.”고 웃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2009-12-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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