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앞선 EU형 한·중·일 평화체제 구상
│하얼빈 박홍환특파원│안중근 의사의 핵심 사상인 ‘동양평화론’이 1세기를 앞선 혜안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동북아평화공동체 등 유사한 주장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때마침 정권교체가 이뤄진 일본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제기됐다.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1910년 2~3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집필됐다. 그 해 3월26일 일본 정부의 사형집행으로 당초 구상했던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는 ▲한·중·일 3국 간의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체 구성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을 역설했다.
의거 100주년을 맞아 국내외에서 그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지난 21일 오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유이궁(友誼宮)에서는 하얼빈 사회과학원 주최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하는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안 의사는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지역 간의 평화체제를 구상했다.”며 “유럽연합(EU)이 그의 구상과 같은 방식으로 통합을 이뤄낸 것을 보면 그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 안목을 가졌던 위인”이라고 평가했다. 오페라 ‘안중근’의 극본을 집필한 왕훙빈(王洪彬) 하얼빈시 전 문화국장은 “안 의사의 사상이 한국은 물론 중국과 세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며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그가 바랐던 동양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길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안 의사나 그의 총에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 모두 동양평화를 주장했지만 결론은 달랐다. 안 의사는 이토를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위험인물로 간주, 서슴없이 총을 빼들었다. 이후 전개된 일제의 침략전쟁은 그의 생각이 정확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안 의사는 재판 과정 및 동양평화론에서 이토 사살을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사형집행 직전에도 동양평화를 외쳤다. 안 의사는 한·중·일 3국이 각각 독립을 유지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길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공동방어할 때 동양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얼빈 사회과학원 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안 의사의 의거 외에 동양평화론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며 “동아시아의 평화공존에 대한 안 의사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2009-10-2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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