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배우자] <상>벤치마킹 포인트

[아일랜드에서 배우자] <상>벤치마킹 포인트

입력 2008-04-07 00:00
수정 2008-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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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경제기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지금도 무수한 나라들이 이를 성장의 교본으로 삼아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 정책의 방향도 아일랜드의 성공사례에서 따온 것이 많다. 과연 우리가 아일랜드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은 무엇인지 2회에 걸쳐 짚어본다.

더블린 글 사진 김태균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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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 리피강 북쪽의 최대 중심지역인 오코넬 거리. 바늘 모양의 첨탑이 경제기적을 자축하고 새천년의 도약을 기원하며 2003년에 세운 ‘더블린 스파이어’.
아일랜드 더블린 리피강 북쪽의 최대 중심지역인 오코넬 거리. 바늘 모양의 첨탑이 경제기적을 자축하고 새천년의 도약을 기원하며 2003년에 세운 ‘더블린 스파이어’.


■아일랜랜드 외자유치 비결



아일랜드의 경제개혁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하나의 학문으로 연구되고 있다. 다양한 연구성과를 종합하면 ▲세계화와 국제경제의 호황 ▲과학기술 중심의 교육투자에 따른 고급 인력 양성 ▲유럽연합(EU) 가입에 따른 광대한 인접시장 형성 ▲정부와 노사 등이 함께 참여한 사회연대협약 모델 ▲법인세율 인하 등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 등 5가지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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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사회연대협약과 외자유치에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경제·사회 시스템 개혁을 통해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여지가 다른 부분보다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아일랜드 정부였다. 외자유치와 집단이해 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경제기적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였다.

“한국에는 아일랜드의 경제발전 과정이 잘못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회연대협약만 너무 강조한다. 사회연대협약은 경제부흥의 여러 요인 중 하나였을 뿐이다. 현재 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주식회사(Ireland Inc.)’가 되는 데 더욱 중요했던 것은 외국자본 유치의 오랜 역사와 그 산물이었다.”

아일랜드 정부의 외자유치 전담부서인 산업개발청(IDA) 브렌든 할핀 대변인은 다소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외국에서는 1987년을 경제기적의 출발점으로 잡지만 우리의 외자유치 노력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고 사회가 안정을 찾으면서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자유치의 중심축은 IDA와 총리실이다.IDA가 제조업 중심의 해외자본 유치에 주력했다면 총리실은 금융자본에 초점을 맞췄다. 더블린 리피강변의 국제금융특구 ‘아일랜드 금융서비스센터(IFSC) ’의 성공은 경제정책국 등 총리실의 작품이었다.IDA는 70년에 만들어졌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외자유치 별동대’였다. 산업통상부 소속이면서도 조직·운영 등에서 완전한 자율권을 부여받았다. 숀 도건 전 IDA 소장은 “대규모 외자유치를 통해 국가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설립한 세계 최초의 독립적 정부조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IDA는 ‘선택과 집중’의 시장원리를 도입하기로 하고 해외 유명 컨설팅업체에 큰 돈을 주어가며 조언을 구했다.

그 결과 정보기술(IT)·의학 등을 중심으로 한 고수익, 고기술 산업을 유치하기로 했다. 그로 인한 결실이 89년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미국 인텔 유치, 세계 상위 15대 제약회사 중 14개사 유치 등으로 현실화한 것이다.

IDA는 투자 프로젝트가 생기면 즉시 특별반(TF)을 구성한다. 자국 투자의사를 갖고 있는 기업과 혈연·지연·학연 등이 있는 사람들을 두루 물색해 심도있는 개별 접촉에 들어간다. 익명을 요구한 IDA 직원은 “해외기업 유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면 남극·북극 관광까지도 시켜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모든 서비스를 쏟아붓는다.”고 했다.

■’악법도 법’ 사회협약의 힘

“아일랜드가 사회적 합의에 유리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끼리 항상 원만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일이다.”(존 던 아일랜드 상공회의소장)

외국자본이 아일랜드의 성장을 외부에서 도왔다면 ‘사회연대협약’이 내부적인 힘의 원천이 됐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국가부도의 위기에서 1987년 1차 사회연대협약인 ‘국가 재건을 위한 프로그램’이 타결된 뒤 합의의 정신은 아일랜드 사회의 안정성을 상징하는 커다란 흐름이 됐다. 정부정책에 항의를 하다가도 “이것은 사회연대협약에서 정해진 것”이라고 말하면 못마땅해도 일단은 수긍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문제가 있으면 다음번 사회연대협약 때 요구를 하고 그때까지는 있는 그대로 따르는 식이다.

지금까지 사회연대협약은 여러차례에 걸쳐 위기를 맞았지만 단 한차례도 파국을 맞지 않았다. 여기에는 이해집단의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에 있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포파스(FORFAS)의 데클런 휴즈 경쟁력분과 위원은 “정부가 투명한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있으며 총리가 3개월에 한번씩 노조 대표와 만나 대화하는 등 노동계와 사회를 연결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에 따른 믿음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73년 설립된 총리실 산하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도 큰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3년마다 총 7차례에 걸쳐 사회연대협약의 초안을 짜 온 것이 NESC였다. 경제발전(성장)과 사회통합(분배)에 필요한 정책수단을 발굴해 이를 사회연대협약의 기본 밑그림으로 노·사·정에 제시해 왔다. 정부·노동자·사용자·농민·비영리단체 등 5개 부문 대표 25명(각 5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용되는것도 아일랜드 사회협약의 특징이다.1차부터 3차까지는 당장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성장 중심의 협약을 했지만 경제가 성장가도를 탄 뒤 4차 때부터는 분배정의·실업해소 등에 초점을 맞췄다. 전국실업자조합, 종교협회, 전국여성협회 등도 새로이 협상자로 참여시켰다.

■슬라이고 새한미디어 유치사례

아일랜드 사람들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1980년대 말 새한미디어 공장 설립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아일랜드 북서부 코노트 주 슬라이고시에 세워진 새한미디어 비디오테이프 공장은 2006년 7월 철수할 때까지 국내기업 유일의 아일랜드 생산법인이었다.

새한미디어가 유럽지역 공장 설립을 추진할 때 각국의 유치경쟁은 대단했다. 아일랜드 말고도 영국, 북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이 다양한 혜택을 약속하며 자국 투자를 호소했다. 벨파스트 인근에 새한미디어 공장을 들이려 했던 북아일랜드는 홍보책자를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런 경쟁을 뚫고 슬라이고가 낙점된 것은 파격적인 조건과 중앙·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한데 맞물린 결과였다. 우선 공장부지(10만평)의 사실상 무상 제공에서부터 환경 등 인·허가 규제 완화, 법인세 10년간 면제, 현지 금융대출 알선, 설비 구매자금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한국 주재원의 자녀교육 보장, 각종 사회보험 및 의료지원 등도 산업개발청(IDA) 한 곳을 통해 ‘원스톱’으로 이루어졌다. 서류를 갖고 여기저기 뛰어다닐 필요 없이 대부분 그들의 방문으로 해결됐다.

IDA는 산업폐수의 환경기준조차 새한미디어가 요구하는 대로 맞춰 주었고 공장 진입로를 넓혀달라고 했더니 아예 없던 길을 새로 뚫어 주었다. 초대형 설비를 운반할 때에는 일대의 교통을 막고 도로 위 전깃줄을 끊어 수송차량의 통행길을 열었다. 운전면허증 국제교류가 되지 않던 당시, 지역 경찰과 연계해 주재원들의 면허 문제를 가볍게 해결해 주기도 했다.

김동국 새한미디어 유럽지사장은 “외국자본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행정의 질(質)을 높여 외자유치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2006년 7월 새한미디어가 사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아일랜드를 떠날 때에도 현지 근로자들의 반발 등은 거의 없었다. 현지 유력언론은 “극서(Far West)에서 온 한국기업이 15년간 우리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물러간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2008-04-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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