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힘으로 입신한 사람들, 사욕만 좇을뿐”

“민중 힘으로 입신한 사람들, 사욕만 좇을뿐”

입력 2007-04-20 00:00
수정 2007-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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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의 성과를 과연 모든 민중이 누리고 있습니까. 정치인 몇 명이 독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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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옹
박용수옹


아픔과 분노, 좌절과 환호, 승리와 패배가 뒤섞였던 1987년 6월, 그 복잡다단한 표정을 한 장의 인화지에 담아낸 시인이자 기록사진작가 박용수(73) 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은 20년이 지난 오늘을 “더없이 살기 힘든 시대”라고 일갈했다. 당시 최루탄 가스 냄새에 갇힌 항쟁의 기억들이 역사적 증거로 남아 있는 것은 온갖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누비고 다녔던 그의 땀방울이 있었기 때문이다.19일 서울 종로구 한글문화학회에서 만난 그는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18세 때 장티푸스로 청각·언어장애인이 된 그는 중요한 부분을 언급할 때마다 펜으로 짧은 문장들을 적어나갔다. 맘속에 쟁여온 6월 항쟁의 뜨거움을 전하기에, 세상의 언어는 너무 빈약했다.

“머리만 좀 다친 줄 알았는데 한열이가 죽었어. 난 (사진을) 찍어야 했어. 찍다 경찰에게 맞아도 찍어야 했기에 참았지. 나 자신을 한열이라고 생각하며 셔터를 눌렀어요.”

그가 담은 이한열 장례식 사진은 당시의 열기를 잘 보여준다. 그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근처에 가기도 힘들었다.”면서 “근처 봉제공장 여공들 도움을 받아 공장 건물에 올라가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온갖 죽음의 현장을 목격하며 내 정신도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며 잠시 말을 중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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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 9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이한열 장례식에는 시민과 학생 등 수많은 인파가 몰려 ‘독재타도와 민주쟁취’ 구호를 외쳤다.
1987년 7월 9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이한열 장례식에는 시민과 학생 등 수많은 인파가 몰려 ‘독재타도와 민주쟁취’ 구호를 외쳤다.


경남 진주에서 사진가로 일하던 1960년 한 문예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시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70년 1월 상경했다.

1974년 11월 소설가 이문구·김정한·박태순·송기원, 시인 고은·신경림 등의 문인들과 함께 1974년 11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를 구성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6월 항쟁 당시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내에 보도실을 만들어 50대의 나이로 현장을 낱낱이 기록했고, 한국 민주화 과정을 담아낸 8만 7000여점의 사진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기증해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당시는 경찰이 사진기자의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어요. 나는 말투도 이상하니까 외신기자라고 속여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그가 촬영에 중점을 둔 부분은 구치소에 수감된 민주인사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호주머니에 작은 카메라를 숨겨 구치소 관계자 몰래 수많은 사진을 찍어 세상에 알렸다. 안동교도소에 갇힌 문익환 목사가 노별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자 문 목사 사진을 찍어 외신에 넘겼다. 서울교도소에 수감 중인 장기표씨를 면회 갔을 땐 기둥에 숨어 셔터를 눌렀다.

그는 “사진이 세상에 공개되면 담당 경찰들이 상부로부터 심한 문책을 받았다.”고 전했다. 기록사진가이기 이전에 민통련 중앙위원이었던 그도 두 번 구속됐다. 그런 그가 바라보는 항쟁 20년 후의 모습은 ‘민중의 삶과는 너무 먼 시대’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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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성과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이 자기 이득만 취할 뿐 민중을 생각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닙니다. 항쟁 당시의 신념으로 산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는 현실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민주화 이후 ‘겨레말 갈래 큰사전’(93년),‘새우리말 갈래사전’(94년),‘겨레말 용례사전’(96년) 등을 펴내며 ‘우리말 지킴이’로 살았고, 또 그렇게 살다갈 그는 마지막 한 문장을 노트에 옮겼다.

“6월은 해마다 오지만 1987년 6월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글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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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2007-04-2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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