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자-복권되지 않은 인생들] 공무원·중개사등 152개직업 파산선고때 해고

[파산자-복권되지 않은 인생들] 공무원·중개사등 152개직업 파산선고때 해고

이효연 기자
입력 2005-11-16 00:00
수정 2005-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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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자에 대한 ‘직업 차별’은 삶의 기반조차 빼앗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현행법으로는 파산 선고를 받으면 공무원·변호사·공인중개사 등 152개의 직업을 가질 수 없다. 면책 선고를 받고 복권이 되더라도 한번 잃은 직업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업계에서 파산자라는 ‘꼬리표’는 지겹도록 따라다닌다. 지난 8일 민주당 김효석 의원이 직업차별 금지를 담은 ‘개인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임시특례법안’을 발의했으며, 민주노동당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놓았다.

5개월 6일 만에 무너진 가족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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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의 노모와 아내, 두 아들의 가장인 최명중(46·가명)씨는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감리전문업체의 감리원인 그는 지난 6월 파산 선고를 받고 면책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달 회사는 최씨에게 건설기술관리법상 파산자는 감리원을 할 수 없다는 결격 규정을 들어 해고했다. 파산을 신청하고 새 인생을 꿈꾸며 취업한 지 5개월 6일 만이다.

최씨는 면책이 코앞에 있으니 두달만 해고를 유보해 달라고 사정도 했다. 하지만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파산자와 같이 근무할 수 없다.”는 냉정한 답변만 돌아왔다.

최씨의 가장 큰 고민은 면책을 받더라도 영원히 감리원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공사가 끝나기 전 정당한 사유없이 감리직을 관두면 벌점이 부과된다. 면책 이후 다른 감리업체에 취직을 하려고 해도 그의 경력에 벌점 기록과 함께 ‘파산’의 딱지가 따라 다닐 가능성이 높다. 최씨는 “변호사도 재기를 위해 취업에 힘쓰라고 했지만 나는 이제 끝난 것이 아닌가 절망감만 든다.”고 눈물을 떨궜다.

약사면허 지키려다 딸마저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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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면허를 잃을까 버티다 버티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못난 아비 때문에 딸마저 파산해야 했다.”

약사인 박창식(가명·56)씨는 한숨만 남았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홀로 하숙을 한다. 불화 끝에 아내(52)와는 별거 중이고, 아들(29)과 딸(31)도 제각각 살고 있다. 시간제 아르바이트 약사로 생활한 지도 3개월. 지방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잘 써주지도 않는다. 월 120만원으로 버티고 있지만 면허가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파산을 주저했다.

그의 가슴 한 편에는 “3년전 빚이 더 늘기전 파산을 신청했어야 하는데….”라는 자책감이 남아 있다. 일부면책이 되면 복권이 될 때까지 약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에게 파산은 무모한 선택이었다. 면허를 지키려다 파산할 시기마저 놓쳤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도 없다. 지금의 개인회생 변제계획으론 돈을 갚고 생활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결혼한 딸마저 함께 빚을 갚다가 지난해 파산하자 아내는 마음마저 완전히 돌아섰다. 그의 빚은 5억 1000만원.4년 전 2억원의 보증 채무를 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덫이었다.

약국은 건강보험공단에 압류됐고 박씨는 파산만은 피해보겠다고 버티며 아직도 빚만 늘리고 있다.

자존심 버린 지 오래…“먹고 살 수만 있다면”

산부인과 의사인 강우진(가명·51)씨와 아내 전주영(가명·53)씨는 부부 파산자이다. 강씨의 빚은 원금만 5억 3000만원. 전씨는 1억 5000만원이다.10년 전 개업을 하면서 받은 대출이 원인이 됐다. 한 차례 의료사고로 거액의 위자료를 주고 재개업을 하면서 압박이 가중됐다. 매달 600만∼700만원씩 거의 3억원을 갚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병원은 내리막길을 걸었다.7년 전부터 돌려막기식 대출로 연체를 막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의사 면허를 박탈당할까 40대 후반을 꼬박 빚갚는 데 세월을 보낸 강씨는 지난해 11월 파산을 신청했다. 그때부터 닥친 것은 본격적인 생계난이었다.

강씨는 신용조회가 두려워 병원 취직은 포기했다.50대 초반의 중견 의사가 대타 진료를 뛰며 응급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파산이 선고된 5월부터 면책이 결정된 지난달까지 자격은 정지됐다.

강씨는 위법인 줄 알면서도 반년 동안 극도의 불안 속에서 무면허 진료 행위를 했다.

안동환 이효연기자 sunstory@seoul.co.kr
2005-11-1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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