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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폐기물 그때 그대로… 기차역 내린 사람은 기자뿐

방사능 폐기물 그때 그대로… 기차역 내린 사람은 기자뿐

김태균 기자
입력 2021-03-07 23:28
업데이트 2021-03-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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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빨리 취재하고 떠나라” 충고
주민 6963명 뿔뿔이 흩어져 피난생활

동일본대지진 10년… 후쿠시마 ‘제1원전’ 4㎞ 떨어진 후타바마치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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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0주년이 다가온 가운데 지난 3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현 도미오카마치의 귀환곤란지역 임시보관소에 주변 오염 제거 작업에서 수거한 토양과 풀을 담은 검은 자루가 가득 쌓여 있다. 후쿠시마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10주년이 다가온 가운데 지난 3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현 도미오카마치의 귀환곤란지역 임시보관소에 주변 오염 제거 작업에서 수거한 토양과 풀을 담은 검은 자루가 가득 쌓여 있다.
후쿠시마 연합뉴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지진과 거대 쓰나미가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등 도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열도의 동부를 강타했다. 1만 8000여명이 사망하고 무수한 사람들의 생활기반이 무너져내린 지 10년. 동일본대지진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건물과 도로는 시간의 흐름 속에 또 다른 형태로 모양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치유되지 않은 비극의 트라우마는 사람들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속에는 피해지역의 고통을 무시하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도 섞여 있었다. ‘부흥 올림픽’을 선전하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그대로 방류하려는 정부를 향한 원망도 전해졌다.

지난 6일 아침 도호쿠 지역 최대 도시 센다이를 출발한 히타치 특급열차가 1시간 10여분을 달려 오전 11시 30분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에 도착했다. “방사능 오염지역이니 최대한 빨리 취재를 끝내고 그곳을 떠나라”, “모자와 장갑은 필수. 방사능 먼지가 날릴 수 있으니 비포장도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 등 피폭 예방을 위한 조언은 첫발을 들이는 기자의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주말 오전 시간대였지만, 10량짜리 열차에서 내린 사람은 기자 외에는 한 명도 없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튿날부터 순차적으로 수소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4㎞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은 현재 일본에서 유일하게 주민 숫자가 ‘0명’인 전면봉쇄 지역이다. 그나마 지난해 3월 새로 단장한 후타바역이 재개통되면서 역 주변 지역 출입이 제한적으로 풀렸다.

역사 뒤쪽에 조성되고 있는 택지 공간에는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낸 대형 검정 포대들이 3중, 4중으로 쌓인 채 100m 이상 행렬을 이뤘다. 역 정면에 위치한 과거 최대의 번화가 신잔 지역은 슈퍼, 약국, 관공서 건물들이 무너지고 뜯겨지고 기울어진 상태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외벽에 걸린 시계들은 정지된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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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곧 철거될 예정인 후타바역 인근 약국. 주변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았다. 오른쪽 뒤편으로 지난해 3월 문을 연 후타바역 신역사가 보인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지난 6일 곧 철거될 예정인 후타바역 인근 약국. 주변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았다. 오른쪽 뒤편으로 지난해 3월 문을 연 후타바역 신역사가 보인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3시간가량 이곳에 머무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같은 후쿠시마현 남부 이와키시에서 현장을 둘러보러 온 야마네 마이코(44·작가)와 그의 친구들 등 단 3명뿐이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거리를 둘러보는 관광버스가 딱 1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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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야마네는 “지난해 3월 전까지는 옛 주민들도 당국의 통행허가를 받아야 마을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제한이 약간 풀렸다”면서 “그러나 1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이 예전의 마을을 둘러보며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복구나 부흥 성과에 대해서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다른 것 같다”면서도 “다만 도쿄 중앙정부가 피해지역 주민들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좀더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후타바마치는 해마다 봄이 되면 벚꽃을 보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여름이면 유명한 지역축제가 벌어지는 곳이었다. 후타바 해수욕장은 인근에서 손꼽히는 명소였다. 후타바 장미정원도 후쿠시마현을 대표하는 유명한 주말 나들이 장소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죽은 마을’이 되면서 10년 전 2584가구, 6963명 주민들은 모두 열도의 최남단 오키나와에서부터 최북단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로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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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오염으로 지역 전체가 봉쇄돼 있는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 이 길은 과거 마을의 최대 번화가였지만 동일본대지진 이후 가옥과 상점, 사찰 등이 무너진 상태 그대로 10년째 방치돼 있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방사능 오염으로 지역 전체가 봉쇄돼 있는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 이 길은 과거 마을의 최대 번화가였지만 동일본대지진 이후 가옥과 상점, 사찰 등이 무너진 상태 그대로 10년째 방치돼 있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이곳 출신으로 유튜버 활동을 하는 슈이치로(27)는 대지진 10주년을 맞은 올해 주요 피해지역을 돌며 취재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기성 미디어가 아니라 우리 젊은 세대의 시선으로 현실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해 복구의 방향이 피해 지역 주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우선순위도 잘못됐다”며 일본 정부가 ‘부흥 올림픽’으로 포장해 올여름 강행하려는 도쿄올림픽을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했다.

“후타바 신역사는 근사하게 지어 놨지만 이곳에서 2~3㎞ 떨어진 곳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실제로는 아닌데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복구가 거의 된 것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속사정을 모르는 도쿄 등 대도시 사람들은 ‘저 정도로까지 정상화됐는데 왜 후쿠시마는 계속해서 우는소리를 하느냐’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향후 제대로 지원받기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후타바마치가 방사능의 비극을 안고 있는 곳이라면 전날인 5일 찾았던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하마 지구는 지역 전체 삶의 기반이 바닷물과 함께 송두리째 휩쓸려 간 곳이었다. 대지진 직전에는 약 800가구, 2100여명이 살고 있었지만 쓰나미로 9%에 해당하는 186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곳을 덮친 10m 높이 바닷물은 해안가 평야 지역에 들이닥친 쓰나미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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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역 역사 뒤쪽 택지 조성 지구에 방사능 오염토가 들어 있는 검은색 포대들이 길게 줄지어 쌓여 있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후타바역 역사 뒤쪽 택지 조성 지구에 방사능 오염토가 들어 있는 검은색 포대들이 길게 줄지어 쌓여 있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예전에 집들이 즐비했던 지역은 잡초가 우거진 공터가 돼 있었다. 당시 폐허가 된 집들은 대부분 철거됐으나 일부 잔해들은 당시 참상을 전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바다에서 7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아라하마초등학교는 1층부터 옥상까지 전시공간으로 일반에 개방돼 있었다. 학교는 2016년 3월 공식적으로 폐교했으나, 다른 지역의 폐허가 된 학교들과 달리 보존 대상으로 지정됐다. 대지진 발생일부터 다음날까지 320명의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옥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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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마치의 공터에 설치된 방사선량 측정기. 사진 촬영 당시 수치는 기준치를 밑도는 시간당 0.176μSv(마이크로시버트)였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후타바마치의 공터에 설치된 방사선량 측정기. 사진 촬영 당시 수치는 기준치를 밑도는 시간당 0.176μSv(마이크로시버트)였다.
후쿠시마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최근 도호쿠 해안에는 쓰나미를 막기 위한 총 400㎞ 길이의 방조제가 지어졌다. 주민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방조제 근처를 산책하던 60대 여성은 정부에 불만이 많았다.

“돈만 억수로 들였지 지난번처럼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면 소용도 없을 거예요. 오히려 높이 쌓아올린 방조제 때문에 수면과 파도의 상황 등 바다의 형세가 가려져 더 위험하게 됐어요. 쓰나미가 닥치더라도 쉽게 보이지 않으니 대피가 늦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는 “후쿠시마현의 농민들이 불쌍해서 현지에서 나온 채소나 과일은 먹고 있지만 그곳에서 잡힌 생선은 절대로 사지도 먹지도 않는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이쪽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강행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쿠시마·미야기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2021-03-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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