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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했던 ‘오빠’들이 ‘포주’로 돌변했고, 나는 ‘성매매녀’가 됐습니다

다정했던 ‘오빠’들이 ‘포주’로 돌변했고, 나는 ‘성매매녀’가 됐습니다

김정화, 이근아, 진선민 기자
입력 2020-11-05 12:37
업데이트 2020-11-0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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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 죄의 기록] ‘범죄의 정글’ 최약자, 소녀 범죄자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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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 운전, 성폭력, 절도, 폭행 등 소년범죄 유형의 70~90%는 남자아이들이 저지른다. 그런데 이 비율이 뒤바뀌는 유일한 범죄가 있다. 성매매다. 2018년 기준 성매매처벌법과 아동청소년보호법(성매수 등) 위반으로 입건된 소년범 가운데 여자의 비율은 각각 85.2%, 56.9%였다. 이들 대다수는 성 착취 피해자이면서 범죄자 처지에 놓여 있다. 서울신문이 지난 6개월간 만난 소녀 범죄자 대부분도 가출한 뒤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나 조건만남 사기(성매수남의 돈을 빼앗는 것)에 내몰리고, 이를 시작으로 점점 더 큰 비행과 범죄에 빠져드는 패턴을 보였다.
일러스트 김용오
일러스트 김용오
# 모텔에 갇힌 17세 하은이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열일곱 살 하은(이하 가명)이는 중학생 때 처음 성매매를 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쉼터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쉼터 친구들이 소개해 준 ‘오빠’들은 처음에는 다정했다. 돌변한 건 한순간이었다. 어느 날 “화장하면 일 시킬 수 있겠지?”라고 수군거리던 오빠들은 하은이를 강제로 차에 태워 서울의 한 모텔촌으로 끌고 간 다음 조건만남을 시켰다. 그들은 성매매를 알선하는 애플리케이션에 하은이의 나이를 스무 살이라고 속여 올렸다. 누가 봐도 앳된 얼굴이었지만 어른 남자들은 진한 화장을 한 하은이를 어른으로 믿는 척했다.

1시간에 15만원, 많으면 20만원. 콘돔을 끼지 않으면 3만원이 더 붙었다. 오빠들은 휴대전화 서너 대로 성매수남과 연락하며 하은이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다. 많을 땐 하루에 60만원도 벌었지만 하은이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모텔에 갇힌 소녀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 나중에 보호처분시설 선생님들과 함께 난생처음 방문한 산부인과에서 진단받은 성병은 8개. 평생 불임이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른들이 ‘악마’라 부르는, 소년범이라는 가면 뒤 숨겨진 진짜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일까. 서울신문은 이들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 봤다. 사진은 6호 보호처분 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 협조를 받았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어른들이 ‘악마’라 부르는, 소년범이라는 가면 뒤 숨겨진 진짜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일까. 서울신문은 이들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 봤다. 사진은 6호 보호처분 시설인 나사로 청소년의 집 협조를 받았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가장 달콤하지만 가장 잔혹한 ‘성매매’의 대가

소년이 주범이라면 소녀는 미끼였다. 고등학생 때 가출한 수빈(19)이는 돈을 벌려고 아는 오빠들과 함께 조건만남 사기를 쳤다. 온라인에서 조건만남 대상을 구한 다음 수빈이가 상대방의 차에 타거나 모텔에 들어가려 할 때 그들이 친오빠인 척 나타나 구해 준다는 시나리오였다. 오빠들은 수빈이 눈앞에서 조건만남 장소에 나온 아저씨들을 마구 두들겨 패고, 편의점 현금인출기로 끌고 가 돈을 대출받게 했다. 수빈이는 “이용당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러웠지만 오빠들이 무섭기도 하고 돈도 필요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서(15)는 가출하고 알게 된 언니에게 포주가 되는 법을 배웠다. 절도, 폭행으로 소년원 10호 처분(소년범 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단계)까지 받은 ‘센 언니’였다. ‘맹해 보이는’ 애들을 꾀어 성매매를 시키고 중간에서 돈을 챙겼다. 그 애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당장 쓸 돈이 필요했고, 그들이 없으면 내가 당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러스트 김용오
일러스트 김용오
# 갈 곳 없는 소녀들은, 제 발로 ‘그 짓’을 찾는다

성매매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만 역설적으로 또래 사이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는 일이기도 했다. 같은 시설에 있어도 소녀들은 성매매 경험이 있는 애들을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오래, 많은 성매매를 했느냐에 따라 등급도 달라졌다. “폭행은 해도 ‘그 짓’(성매매)은 안 했다”고 하거나 “나는 한두 번 했으니까 ‘소걸레’, 쟤는 더 심하니까 ‘대걸레’”라고 비하하는 식이다.

이런 인식 탓에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시 그 길을 택했다. 하은이도 그랬다. 6개월 만에 겨우 오빠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정말 갈 곳이 없었다. 분명히 피해자였는데, 학교 친구들은 물론 엄마까지 하은이를 탓했다. 그 뒤로는 모두와 연락을 끊고 자발적으로 ‘조건’을 뛰었다. ‘돈줄’을 구하는 건 쉬웠다. 가만히 있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살이야?”, “예쁘네.” 아빠뻘도, 삼촌뻘도 있었지만 ‘진짜 어른’은 없었다. 몇 마디 대꾸해 주면 상대는 금세 제안해 왔다. “우리 만날래?”

# 법은 ‘피해’는 미뤄두고 ‘범죄’를 본다

법은 아이들을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로 분류했다. 지난 4월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 전까지만 해도 하은이 같은 아이들은 모두 보호처분 대상으로 처벌받았다. 강제로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로 봐 주지 않았다. 알선자나 성매수자는 이런 법을 악용해 오히려 협박의 도구로 쓰기도 했다. 아동청소년보호법이 소녀가 성매매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무시한다는 지적은 줄곧 제기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와 십대여성인권센터 등에 의뢰해 실시한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19세 미만 응답자의 61%가 “가출 후 주거·일자리·경제 문제 등 절박한 상황에서 성매매를 했다”고 답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청소년의 성행위 자체를 죄악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미성년자는 알선자보다 성매매를 한 당사자의 죄가 더 크다고 여긴다”며 “성 착취 피해자인 청소년은 ‘한번 소문나면 끝’이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고 더 큰 범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상담하다 보면 자기가 좋아서 조건만남을 했다는 아이들도 결국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받은 상처를 잘못된 방식으로 위로하기 위한 경우일 때가 많다”며 “돈으로 꾀어 이용한 어른들의 잘못을 아이들의 잘못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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