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반경 600m, 노후관 877개… “언제 또 녹물 날지 모른다 아임까”

입력 : ㅣ 수정 : 2020-01-13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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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수돗물 대해부] <1> 17개 광역 시도 수질민원 1위 대구…노후관과 민원은 왜 빈자의 땅에 집중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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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틀면 흙탕물이 막 갖다 쏟아지는 거 아입니까. 민원 내보이 뭔 급수관을 교체해준다꼬 저짝 골목부터 공사해주대요. 그 급수관이 30년 넘었다카대요. 그란데 이쪽 골목은 땅 파기가 어려워가 그냥 갔어요. 지금은 녹물은 안 나오는데, 언제 또 나올지는 모른다 아입니까.”

지난해 11월 21일 대구시 서구 비산5동 주민센터 인근 허름한 주택가 골목. 50년 된 구옥들 사이에서 만난 박길수(82·가명)씨는 반년 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박씨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수압이 약해서 이 지역 2층 집엔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인근 큰 길가에 배수관 공사가 진행되고 2층 집에도 잘 나왔다. 문제는 그 후부터였다. 수도꼭지에서 이물질이 섞인 흙탕물이 터져 나왔다. 박씨는 2018년 6월 대구 상수도사업본부에 민원을 넣었고, 노후 급수관 교체 공사가 진행됐다. 박씨는 “집 사이 간격이 좁아 노후 급수관을 완전히 교체하지는 못했다고 들었다”며 “예전처럼 종종 흙탕물이 나오긴 하지만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버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구시 수돗물 보급률 100%. 그러나 누구나 똑같은 품질의 수돗물을 공급받는 건 아니다. 어느 취수원의 물을 받느냐에 따라 다르고, 정수된 물이 소비자에게 배달되는 동안 어떤 상수관을 거쳤느냐에 따라 수돗물의 품질은 달라진다. 동일한 요금을 내지만 지역, 환경에 따라 다른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신문은 2016~2019년 7월 대구시에 접수된 수질 민원 5896개와 30년 이상 매설된 급수관 2만 2122개(매설 연장 21만 6962m)의 구체적 위치 데이터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했다. 지리정보 분석 업체 ‘비즈 GIS’가 제공하는 ‘X-ray Map’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질 민원과 노후 급수관의 위치를 지도상에 점을 찍어 일일이 확인했다. 분포된 점들을 바탕으로 밀집도를 분석했고, 반지름 0.6㎞의 원(면적: 1.13㎢)을 기준으로 대구시 내에 각 지점들이 많이 몰려 있는 5개 지점을 뽑았다.

이 밖에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손상된 급수관의 보수 공사 지점’, ‘노후 상수관 교체 지점’, 녹이 잘 슬어 1994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30년 이상 된 아연도강관’ 지점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교차 분석했다. 대구시는 전국 17개 특·광역시도 가운데 수질 민원이 제일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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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돗물 1차 원인은 노후 급수관

그 결과 노후 급수관 밀집 지역에 수질 민원 역시 몰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붉은 수돗물의 일차 원인이 노후 급수관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주택들이 많고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았다. 특히 아파트 지역보단 오래된 주택 밀집 지역에서 수질 민원이 많았다. 가난하고 낙후된 동네는 적수가 나올 확률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구시에 국한된 데이터 분석이지만, 전국으로 확대해도 비슷한 경향성이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질 민원과 노후 급수관 모두 많은 곳은 서구 비산동이다. 비산1동 주민센터를 기점으로 반지름 0.6㎞의 원 안에 수질 민원이 206건으로 제일 많았다. 대구시 전체 면적(884.2㎢) 대비 0.1%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대구 전체 수질 민원의 3.5%가 발생하고 있었다. 30년 이상 된 노후 급수관의 분포를 보면, 이 원 안에 684개가 있었다. 또 300m 떨어진 지점인 비산6동 공영주차장 지역 인근 원 안에 노후 급수관은 877개(수질 민원 181개)로 대구시 일대에서 가장 많았다. 이 지역들 모두 오래된 주택 지역이다.

비산동 일대는 대구시에서 가구별 추정 연평균소득이 가장 낮다. 비즈 GIS가 측정한 연평균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은 비산7동 경로당 인근(3903만원)으로 수질 민원은 129건, 30년 이상 노후 급수관은 457개였다. 이곳에서 1.1㎞ 떨어진 수질 민원이 가장 많은 구역인 비산1동 주민센터 인근의 연평균소득은 4141만원이었다. 거주 인원은 총 2만 4594명인데 반해, 직장인구는 3257명(13.2%)에 그쳤다. 노인인구 비중도 높다. 이 지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3.6%(지난해 10월 기준)에 이른다. 대구시의 노인 인구 비율(15.2%)보다 8.4% 포인트 높다. 비즈 GIS는 통계청 지역통계와 국세청 납세정보 등을 종합해 가구별 소득을 추정하고 있다.

비산7동에서 만난 배금옥(45·여·가명)씨는 “4년 전 이사 올 때부터 수돗물을 2~3일 쓰지 않다가 틀면 녹물이 나온다”며 “서구에는 인근 산업단지도 있어 공기도 안 좋고, 수성구 같은 부자 동네와 비교하면 기본 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남문시장 일대, 사용 중지된 아연도강관 밀집

대구 중구 남산동의 남문시장 사거리 일대는 상황이 또 다르다. 이곳은 주택가 위주였던 서구 비산동과 달리 오래된 시장 골목이 형성돼 있다. 특이한 점은 이 지역에 녹이 잘 슬어 1994년부터 사용이 중단된 아연도강관이 밀집해 있다는 점이다. 아연도강관은 서구 비산동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구 시내에서 대부분 교체가 이뤄졌지만, 유독 이곳만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구역의 수질 민원은 138건으로 30년 이상 노후 급수관은 720건, 30년 이상 아연도강관의 건수는 163건에 이른다. 서구 비산동의 경우 아연도강관은 동일한 원 면적 내에 2~4건에 불과하다. 대구시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일부 상업지역은 노후관 교체 공사를 하고 싶어도 공사를 할 수 없다”며 “장사에 지장이 있다며 상인들이 거부하는데, 우리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도 30년 이상 된 노후관을 교체하고는 있다. 2030년까지 발생하는 노후관 934㎞(총 4445억원)를 모두 교체할 계획이다. 대구시 전체 상수관(8013㎞)의 약 11.7%에 해당한다. 대구시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656억원을 들여 164㎞를 교체했다. 다만 대구시의 경우 녹이 잘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강관은 매설된 지 30년이 지나도 노후관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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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리스강관도 녹슬고 아연 침전물 생겨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독고석 단국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스테인리스강관이라고 해서 녹이 안 스는 것도 아니고, 아연 침전물이 생길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단지 스테인리스강관이라고 노후관에서 제외하는 건 옳지 않다”며 “적수가 생기는 원인은 다양한 만큼 수질민원이 많은 이유를 따져 보려면 매설된 관에 내시경을 집어넣어 육안으로 관찰하는 등 보다 정밀한 원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연평균소득 6000만원 이상 가구가 몰려 있는 지역에선 수질 민원과 노후 급수관이 적었다. 도시 자체가 젊고, 오래된 건물들은 이미 허물고 다시 올렸기에 노후 급수관이 차지할 공간이 없었다. 평균소득이 7179만원인 수성구 범어동 롯데캐슬 인근(반경 0.6㎞, 면적 1.13㎢)의 경우 수질 민원은 25건, 노후 급수관은 111개였다. 수질 민원이 많은 비산1동 주민센터 인근의 10분의1, 노후 급수관이 가장 많은 비산6동 공영주차장 인근 지역의 8분의1 수준이다. 아파트 거주 가구 비율은 85.2%였다.

대구 환경운동연합 계대욱 사무국장은 “대구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부터 지난해 과불화화합물 유출 사태까지 수돗물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하다”며 “특히 비교적 가난한 지역의 시민들이 낙동강 물을 마셔 지역 간 차별 인식도 존재하는데, 수도 행정은 이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대구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대구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대구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2020-01-1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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