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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청년에 매달 50만원 “삶의 숨통, 시간을 벌었다”

모든 청년에 매달 50만원 “삶의 숨통, 시간을 벌었다”

김헌주 기자
김헌주, 이성원, 김정화 기자
입력 2019-12-31 23:18
업데이트 2020-01-0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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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통장에 매달 50만원이 꽂힌다면] <상> 청년 10인이 겪은 청년수당

‘월 50만원이 그냥 주어진다면?’ 이 물음에 우리 청년들은 어렵지 않게 답했다. “생활비로 쓰고 싶어요.” 실제로 서울신문이 만난 청년 10명은 저마다 생활에 필요한 곳에 이 돈을 쓰고 있었다. 누구는 교통비로, 누구는 학원비로, 또 누구는 국밥보다 5000원 비싼 1만 2000원짜리 삼계탕을 사 먹으며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다고 했다. 새해처럼 빛날 우리 청년들을 위해 50만원을 6개월간 주는 게 과연 부질없는 것일까. 서울신문은 신년을 맞아 3회에 걸쳐 청년수당과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봤다. 찬성하는 이들은 국민의 생활 안전판이라 여겼고, 반대하는 이들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우리 사회에 가져다줄 재앙이라고 했다. 확실한 건 기본소득이 우리가 충분한 토론을 거쳐 따져 봐야 할 손에 잡히는 미래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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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허리부터 숙이고 불쌍한 척하는 게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치매를 홀로 감당해 온 조기현(27)씨는 청년이란 자의식이 생긴지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일터에 뛰어들어 생활비를 벌었다. 아버지가 생계급여를 받는 동안 조씨는 국가 앞에서 언제나 약자의 삶을 강요받았다. 행여 생계급여가 깎일까 봐 가난을 부풀려야 하는 자괴감은 그를 더 비참하게 했다. 그랬던 조씨가 지난해 처음으로 당당하게 받은 지원금이 있다. 청년이란 정체성을 찾은 것도 이때다. 서울시 청년수당 수급자인 조씨는 31일 “한 번도 노동을 쉬지 않았던 나 같은 사람도 청년이란 이름으로 지원을 받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조씨는 이 수당을 받아 지난 11월 아버지의 간병기를 다룬 ‘아빠의 아빠가 됐다’란 책을 내고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청년실업, 청년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방법론이 제시됐다. 하지만 현실화된 것은 극히 일부다. 재원도 문제지만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반대도 만만찮다. 부정적인 여론의 이면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년을 믿지 못한다면 이들에게 매달 50만원 또는 연 10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 성남시,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와 고용노동부는 모험적인 실험에 나섰다. 서울신문은 이 모험에 동참한 청년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하기 위해 10명을 인터뷰했다.

#1. 집 밖으로 나오다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2015년부터 임용고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 김승현(31)씨는 자신을 “실패자”라고 소개했다.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입성할 때만 해도 당당히 합격할 줄 알았던 김씨에게 4년간의 수험 기간 끝에 남은 건 120㎏의 몸뿐이었다. 김씨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계속 먹었다고 했다. 빨리 먹을 수 있고 가격이 저렴한 패스트푸드를 주로 찾았다.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올해에는 시험 준비도 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우울감만 커졌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피하게 됐다는 김씨의 삶은 서울시 청년수당을 받으면서 달라졌다. 지난 5월부터 6개월 동안 매달 50만원을 받으면 이 중 15만원은 운동하는 데 썼다. 목표는 35㎏ 감량. 중간에 수술하면서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25㎏을 빼는 데 성공했다. 청년활력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을 만나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는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2.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생겼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김은교(27)씨는 지난 1월 대학병원에 통신 엔지니어로 취업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2년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했던 김씨는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 청년수당을 받은 뒤로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학원에 다녔다. 수당은 대부분 식비와 교통비로 쓰면서 6개월간 온전히 취업에만 집중했다. 병원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학원에서 추천을 받은 덕이었다. 김씨는 “청년수당을 못 받았다면 학원 수강이 미뤄지면서 취업도 늦어졌을 것”이라며 “돈이 아닌 시간을 선물받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빅데이터 관련 창업 준비를 하는 김경민(27)씨도 “시간을 벌었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올해 고용부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받게 된 김씨는 사업 계획 발표 등으로 서울에 출장을 갈 일이 많은데 교통비 부담 때문에 고민이 컸다. 하지만 6개월 동안 매달 50만원씩 지원받으며 차비 걱정이 없어졌다. 김씨는 “뭘 하려고 해도 예산 때문에 주저하게 되는데 50만원이 생기고 나서는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3.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다

서울에서 자취하며 취업 준비를 하는 김빛나(26)씨는 주거비로만 월 50만원 넘게 쓰다 보니 항상 재정 압박에 시달렸다. 교통비라도 줄이기 위해 집에서 스터디 장소까지 45분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다 지난 5월 고용부로부터 지원을 받은 뒤로는 식사비를 아끼기 위해 굳이 집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 밖에서 사 먹어도 됐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덜었다. 김씨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모님에게 재정 지원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다”며 “나중에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낼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김준호(25)씨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습관처럼 잔고 확인을 했다. 한 달 교통비, 식비 등을 늘 계산하면서 지출해야 했던 김씨는 지난 상반기 경기도에서 지원하는 청년기본소득을 받을 때만큼은 잔고 걱정이 덜했다고 한다. 분기별 25만원으로 월 1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김씨는 “이 돈이면 ‘밥이 몇 끼고, 친구랑 커피 몇 잔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여유가 절로 생기더라”고 말했다. 지난 10월까지 서울시 청년수당을 지원받은 뒤 유명 커피전문점에 바리스타로 취업한 이한글(27)씨도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조금이나마 여유를 누리라고 지원해 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성남시 청년배당(분기별 25만원씩 총 100만원)을 받은 대학원생 설동훈(26)씨도 “절대적 액수로 보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청년들이 복지를 체감하기에는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무작정 지원을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는 자성도 청년들 사이에서 나온다. 고용부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수령자 사이에서는 지원금으로 애플 ‘에어팟’을 사도 되는지를 놓고 온라인상에서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흥, 도박이 아니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랏돈을 이런 데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조기현씨는 “생애 한 번 꼭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면 청년들이 미리 계획을 세워 지원금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20-01-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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