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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병’과 ‘장난감총’…미국을 분노케한 두 소년 이야기

‘부자병’과 ‘장난감총’…미국을 분노케한 두 소년 이야기

입력 2016-01-03 10:45
업데이트 2016-01-0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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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 죽이고도 징역형 면한 백인 이선 vs 장난감총 들고 있다 사살된 흑인 타미르

미국의 열여섯 살 소년이 술을 잔뜩 마신 채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도로를 질주했다. 혈중 알코올농도는 허용치의 3배에 가까운 만취 상태였고 제한 속도도 훌쩍 넘긴 채였다.

미국의 다른 열두살 소년은 BB탄 총을 가지고 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협했다. 소년이 휘두르는 총이 장난감이라는 확신이 없던 행인은 겁에 질려 슬금슬금 피했고, 소년은 신이 난 듯 쫓아가며 총을 겨눴다.

둘 다 미성숙한 10대의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의 결과와 소년들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16세 백인 소년 이선 카우치는 음주 과속운전으로 4명을 숨지게 하고 식물인간이 된 친구를 포함해 여러 명을 다치게 했지만, ‘부자병’(어플루엔자·affluenza)이라는 기상천외한 진단을 받으며 보호관찰 10년의 관대한 판결을 받았다.

아무에게도 모형총을 쏘지 않았던 12세 흑인 소년 타미르 라이스는 행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2초 만에 사살됐다.

두 소년의 엇갈린 운명이 최근 다시 극명하게 대비되며 미국 내에서 법과 정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라이스를 사살한 경관이 기소를 면한 것과 카우치가 여전히 ‘비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나란히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발생한 타미르 라이스 사건에 대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대배심은 라이스를 쏜 티머리 로먼 경관의 행동이 타당한 공권력 집행이었다며 불기소를 결정했다.

검찰은 “소년이 총을 맞아 쓰러질 때 허리띠에서 총을 꺼내려고 한 행동이, 총을 경찰에 넘겨주거나 총이 진짜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반론의 여지가 없다”며 “그러나 경찰이 현장에서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경찰은 라이스가 진짜 총을 든 성인이라고 판단했으며, 손을 들라는 경찰의 명령을 듣지 않고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자 총을 발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CCTV에서는 공원에 앉아있던 라이스 앞에 경찰이 차를 세운 후 2초 만에 발사하는 모습이 담겼고, 911에 신고한 시민이 “총이 가짜일 수 있으며, 총을 흔드는 사람이 청소년일 수 있다”고 말한 사실도 공개됐다.

그러나 무고한 흑인을 사살한 많은 백인 경관들이 그랬듯 라이스를 쏜 경찰관도 기소를 면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타미르 라이스가 중산층 동네에서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백인 소년이었다면 지금 살아있을 것”이라며 “그는 빈민가의 흑인으로 태어난 죄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경관에 대한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 바로 그날 이선 카우치는 멕시코에서 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백만장자 부모를 둔 카우치 측은 2013년 사건 당시 재판에서 삶이 너무 풍요로워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부자병’을 앓고 있다고 호소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징역형 대신 보호관찰형을 내렸다.

그러나 이달 초 그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동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오며 보호관찰 위반 의혹이 생기자 그는 모친과 함께 멕시코로 달아난 것이다.

멕시코에서도 도망자라기보다는 휴가 온 관광객처럼 여유 있게 지내는 모습이 공개돼 더욱 분노를 샀다.

카우치는 현재 미국 송환을 피하기 위해 멕시코 법원에 낸 인신보호를 신청한 상태다.

대니얼 필러 미국 드렉셀 법과대 교수는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에 “타미르 라이스와 이선 카우치의 사건을 대비시키지 않을 수 없다”며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법이 문화적인 요인을 바탕으로 사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적용되는지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헤럴드는 “두 사건은 결과가 충격적일 정도로 다른 탓에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촉발했다”며 “법의 허점 탓에 이러한 결과가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노를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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