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in] 데드 걸

[강유정의 영화in] 데드 걸

입력 2007-11-03 00:00
수정 2007-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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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워크처럼 얽힌 다섯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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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위협적이다. 죽은 자가 위협적인 까닭은 그들의 신체가 훼손되고 썩어가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변하지 않기에 위협적이다. 살아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영원히 부정되거나 변화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 상태 그대로 증거가 되는 자들, 그들이 바로 죽은 자들 그리고 사체들이다.

황량한 벌판 한 가운데서 사체가 한 구 발견된다. 영화 ‘데드 걸’은 심하게 훼손된 한 여자의 사체에서 시작해 그녀가 시체가 되기 직전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데드 걸’의 독특한 점은 ‘사체’라는 낯익은 스릴러적 소재를 삐딱하게 비틀었다는 데에 있다. 수사극처럼 건조하게 시작된 영화가 전혀 다른 방향의 드라마로 진행되는 것이다.

다섯 편의 옴니버스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작품의 에피소드들은 패치워크처럼 서로 다른 조각보들과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조각보는 엄마와의 폐쇄적인 삶에 자신을 차압당한 한 여자에 관한 것이다. 사체 최초 발견자인 여자는 갑작스럽게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어머니는 이 사실을 두고 여자를 비난한다. 그녀와 어머니의 관계는 실상 억압적인 구속에 가깝다.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과 불편함 가운데서 방황하던 여자는 결국 낯선 남자를 따라 나선다. 드디어 어머니를 끊어 내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데드 걸’은 죽은 여자가 아닌 ‘사체’와 연결된 삶을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이 삶 가운데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카렌 몬크리에프 감독은 시체를 둘러싼 다섯 여자들을 통해 ‘결핍’을 그려낸다. 그들의 삶은 누군가의 부재 혹은 무언가의 결여로 황폐화되어 있는 것이다. 가령, 첫 번 째 이야기에는 아버지 그리고 죽은 형제의 빈자리가 등장한다. 검시관의 이야기를 그린 두 번 째에는 실종된 자매가 자리잡고 있다. 세 번 째 에피소드의 연쇄 살인범의 아내에게는 남편과의 소통이 없고, 네 번 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엄마’에게는 딸이 사라져 버렸다.

‘데드 걸’이 시체를 둘러싼 스릴러가 아닌 여성의 삶에 대한 드라마로 읽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국 훼손된 것은 죽은 자의 몸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삶 자체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조금 다른 삶을 향해 움직여 가지만 그 이동이 결코 쉽지마는 않다. 부재와 결핍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매 에피소드는 가없이 흔들리는 구원의 손길에서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과연 몬크리에프 감독은 결핍에 대한 보상과 충족을 기대하는 것일까?

도리도리, 그렇지는 않은 듯 싶다. 마지막 에피소드, 그러니까 사체로 발견된 여자, 크리스티나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고 받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녀가 도움을 청한 이는 연쇄살인범이며, 손길을 잡는 순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딸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사로잡힌 크리스티나는 조금 뒤 처참히 살해당한 채 벌판에 버려질 것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만 한편 또 시작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부재와 희망, 소통의 역학관계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폭력으로 짓밟히기 직전, 환하게 웃는 크리스티나의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휘발된 희망과 소통하는 영화,‘데드 걸’이다.



영화평론가
2007-11-03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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