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난 사람] 조지메이슨대 정유선 박사

[이달에 만난 사람] 조지메이슨대 정유선 박사

입력 2007-07-15 00:00
수정 2007-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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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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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저자로 참여한 <첫아이> 출간 기념 사인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정유선 씨(37세). 그는 2004년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는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모교인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귀국 소식이 알려지자 여러 매체에서 취재 요청이 쇄도했고, 샘터는 출국을 하루 앞두고, 모교인 동국대 부속여고에서 방송촬영 중인 그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그는 반가운 눈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소녀, 세상에 나가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인 김상숙 씨(73세)는 그의 여고생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체력장에서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불편한 몸으로 얼마나 죽을 힘을 다해 뛰던지…. 그는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 하는 만큼 다 하고 싶었던, 아니 더 잘하고 싶었던 아이,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너무 속이 상했던 아이”로 그는 자신을 기억했다. 사춘기 시절, 처음으로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무엇보다 언어 장애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제때에 못 하는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남다른 삶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이제 대학에 들어가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이 시작될 텐데 나는 남들 다하는 미팅도 못 할 것이고.’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던 소녀가 자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두려웠다. ‘내가 과연 아이를 기를 수 있을까?’ ‘기저귀 가는 건 잘할 수 있을까?’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과 대화는 어떻게 하지?’ 엄마가 되는 건 그가 지금껏 딛고 일어서야 했던 어떤 장벽보다 더 큰 용기와 내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첫아이를 세상에 내놓던 날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가야, 나에게로 와줘서 정말 고마워. 어쩌면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똑같이 해주지 못하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것 때문에 너와 내가 조금 힘이 들 수도 있단다. 하지만 약속할게.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가 최선을 다할게. 우리,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자.” 이렇게 그는 엄마가 됨으로써는 자신 안에 스스로 만들어 놓았던 벽을 하나 뛰어넘었다.

첫아이는 그에게 엄마로서의 삶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하빈이를 임신하고서 그는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보조공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보조공학이란 장애우의 불편함을 해소시켜주는 기기나 서비스를 통칭하는 말. ‘무슨 공부를 하고 어떤 일을 하든 장애우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해왔던 그에게는 정말 하늘이 내리신 공부였다. 그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보조기구의 덕분이다.

작년 2월, 학생들이 제출한 교수평가안을 보고 있는데 하빈이가 그에게 물었다. “엄마는 말을 잘 못 하는데 학생들은 왜 엄마 강의가 체계적이고 명확하다고 평가해?” 그는 차근차근 자신의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하빈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프지 않아?” “괜찮아. 엄마는 장애가 있긴 하지만 다른 엄마들하고 똑같잖아.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도 됐고, 대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잖아.” 그러자 하빈이가 또 물었다. “그럼 엄마는 장애가 있으면서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첫 번째 사람이야?”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으로는 처음이라고 했더니 하빈이는 감동을 받았는지 하품을 했다.(하빈이는 언젠가부터 눈물이 나면 꼭 하품하는 척을 한다.)





엄마, 나의 또 다른 이름

어렸을 때 그는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달리기도 공부도 무엇이든 열심히 했다. “너는 장애가 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고, 장애를 가진 딸을 숨기기보다 어디든 데리고 다니셨던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런데 이제 그에게는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두 아이의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다.





언젠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문지기가 너는 누구냐 하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셨던 아빠, 엄마의 소중한 딸이요, 나를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한 장석화 씨의 멋진 아내요, 나에게로 와주어서 너무 고마운, 사랑스러운 하빈이와 예빈이의 친구 같은 엄마요, 나를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만큼 다 보답하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와 죄송한 정유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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