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政敵’과 서신정치… 독살설 희박

정조 ‘政敵’과 서신정치… 독살설 희박

입력 2009-02-10 00:00
수정 2009-02-10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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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벽파 심환지에 보낸 비밀편지 299통 발견

조선 22대 국왕 정조(1752~1800년)가 재위 말년에 막후에서 은밀한 통치행위를 벌였음을 보여주는 친필 어찰 6첩 299통이 발굴됐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9일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의 종합 검토’ 학술대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조가 예조판서와 우의정으로 있던 노론 벽파(僻派)의 거두 심환지(1730~1802년)에게 보낸 비밀편지의 일부를 공개했다.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보낸 이 편지들은 개인이 소장해 오던 것으로, 1년동안 탈초(정자체로 풀어쓰기)와 번역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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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299통이 9일 공개됐다. 큰 사진은 안대회(가운데)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13일 전 ‘뱃속의 화기(火氣)’를 언급하며 불편함을 호소한 편지의 내용을 설명하는 장면. 작은 사진은 지난해 청송 심씨 문중이 기증해 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480호 심환지 초상.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 299통이 9일 공개됐다. 큰 사진은 안대회(가운데)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13일 전 ‘뱃속의 화기(火氣)’를 언급하며 불편함을 호소한 편지의 내용을 설명하는 장면. 작은 사진은 지난해 청송 심씨 문중이 기증해 경기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480호 심환지 초상.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현안 있을 때마다 의견 조율

임형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은 “조선조 국왕의 어찰로는 가장 많은 분량인 데다 정조가 심환지 한 사람에게 보낸 비밀편지라는 점에서 정조 말년 정국 동향의 비밀스러운 전개과정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획기적인 사료”라고 평가했다. 정조는 어찰이 공개될 때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편지를 없앨 것을 지시했으나 심환지는 어찰을 받은 날짜와 시간, 장소를 꼼꼼히 기록해 보관해 왔다.

편지에 따르면 정조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의견을 조율하고, 지시를 내렸다. 노론 벽파인 심환지가 정조와 날카롭게 대립했다는 통념을 깨는 한편 어진 선비형으로 알려진 정조가 막후 정치에 능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조가 1798년 7월14일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한 뒤 8월28일 우의정으로 발탁하기에 앞서 금강산으로 ‘피신여행’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정조와 심환지는 수많은 비밀편지를 교환하며 미리 상의했다. 심환지가 우의정으로 있으면서 여러번 사직상소를 올린 것도 정조의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선 정조와 심환지(노론벽파)의 대립을 쉽게 얘기하지만 1795년 화성 축조 이후 정조가 노론벽파를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인정해 본격적으로 등용했음을 보여준다.”면서 “당대 벽파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앞으로 학계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정조는 남인계 거두 채제공(1720~1799년)과도 비밀편지를 주고받았음이 최근 밝혀졌다. 이는 정조가 노론과 소론, 남인, 시파와 벽파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당파를 초월해 어찰을 통한 정치를 꾀했음을 보여준다.

●수차례 건강이상 언급

이번 편지 발굴로 정조 독살설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정조는 사망 13일 전인 1800년 6월15일에 심환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에서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고 호소한 것을 비롯해 수차례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음을 토로했다.

소장자는 조만간 원본을 공신력 있는 기관에 기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인본은 내달 중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간행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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