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과잉의 시대 정치야 돌아와라”

“경제 과잉의 시대 정치야 돌아와라”

이문영 기자
입력 2007-12-27 00:00
수정 2007-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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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왜소화, 경제 비대화´. 현 한국사회의 뚜렷한 정치현상이다.2007년 대통령선거만큼 각 후보의 정책적 차이가 ‘경제 살리기’란 단일 구호에 파묻혀 일원화된 적은 없었다. 최근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 ‘후마니타스’가 정치를 주제로 잇따라 펴낸 세 권의 책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정치실종’이란 우려와 맞닿아 있다.

‘어떤 민주주의인가(최장집 등 지음)’와 ‘정치적인 것의 귀환(샹탈 무페 지음)’,‘정치와 비전(셸던 월린 지음)’은 `여전히 문제는 정치´란 관점에서 기획된 책으로, 대선 전후 정치상황을 비판적으로 독해하는 데 유용한 시각을 제공한다.

최장집(정치외교학) 고려대 교수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출판사답게 책 출간의 바탕엔 한국 정치현실을 비판해온 최 교수의 일관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한·미FTA, 삼성비자금, 양극화 등 첨예한 사회 갈등을 대선에서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당구조가 한국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어떤 민주주의인가’는 기획자들의 시각이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된 책이다. 참여정부의 ‘정당 배제’ 정치가 국가관료제와 전문가 엘리트 정치의 강화를 낳았다며 각을 세운다.‘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사회 갈등을 드러내기보다 은폐해온 자유주의 정치학을 비판하며,‘정치와 비전’은 당대 상황에 끊임없이 개입해온 저자 월린(미국 프리스턴대 명예교수)의 현실주의적 관점이 뚜렷이 부각된다. 세 권의 책이 한국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겨냥하는 타킷은 민주화 이후 지배적 시각처럼 굳어진 ‘정치과잉 담론’이다. 이는 권력자들의 `놀음판´이자 사회갈등만 유발하는 `투쟁장´인 정치를 축소해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수준에서만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논리로,`경제를 살리자.´란 구호 하나로 치러진 올 대선에서 극단적으로 현실화됐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은 “세 책의 공통점은 사회 구성원의 욕구를 채우는 하위 체제인 경제가 사회 전체의 운영원리인 민주주의를 대체한 현실을 비판한 것”이라면서 “서로 다른 시각과 갈등을 표출하지 못하는 정치전선의 부재는 정치적 성숙이 아닌, 민주주의의 위기를 드러내는 징후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특히 경제가 사회의 유일무이한 규범으로 자리잡은 현실을 비판한 월린의 ‘전도된 전체주의’ 개념은 한국 정치상황에 비춰봐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박 주간은 “이명박 정부 출범은 일자리를 만들어 모두가 잘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경제제일주의’를 국민이 선택한 것”이라면서 “그간 소외돼온 목소리는 ‘경제’를 외치는 확성기 뒤편으로 더욱 숨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장집, 무페(영국 웨스트민스터대 교수), 월린의 메시지가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최장집은 지난해 불거진 노 대통령의 개헌론을 비판하며 월린을 거론했고, 무페가 책에서 인용한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최장집의 책에도 자주 등장한다. 월린이 민주주의를 법이나 제도로 제한하는 것을 비판하며 체제 밖의 운동적 참여를 중시하는 반면, 최장집은 정당정치를 통한 제도적 실천을 강조한다. 무페는 제도정치와 운동의 중요성을 동시에 주목하며 월린과 최장집 사이를 잇는다. 대선에서 패배한 진보·개혁진영의 향후 ‘민주주의 위기’ 논쟁은 이 세 스펙트럼 안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2007-12-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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