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민주주의/케빈 필립스 지음

부와 민주주의/케빈 필립스 지음

입력 2004-09-04 00:00
수정 2004-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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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예비선거 ‘국가적 경매’와 조롱하기도

미국은 지금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다.누구나 짐작하듯 그것은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돈잔치’다.대통령 선거자금 모금 행위는 종종 ‘부의 예선(wealth primary)’이라 불린다.예비선거 자체를 ‘국가적 경매’라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다.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의 선거자금 모금체제를 “국가를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응찰자에게 팔아 넘김으로써 공직을 유지하려는 양당 공모하의 정교한 직권남용체제”라고 일축한다.미국의 정치 또한 다른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공공연하게 돈으로 흥정되는 ‘시장터 정치’인 셈이다.

‘부와 민주주의’(케빈 필립스 지음,오삼교·정하용 옮김,중심 펴냄)는 미국 금권정치의 역사와 거대 부호들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다룬다.저자는 닉슨 대통령 시절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 정치평론가로,그의 첫 저서 ‘공화당 다수파의 출현’은 닉슨 시대의 정치적 바이블로 통한다.그는 1990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부자들에 대한 특혜와 부의 집중을 분석한 책 ‘부자와 빈자의 정치’를 펴내며 공화당과 결별,지금은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전쟁 때부터 행해진 금권정치

미국의 금권정치는 멀리 독립전쟁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독립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10만명에 이르는 왕당파 부호들은 재산을 몰수당한 뒤 미국을 탈출,영국과 캐나다 등지로 옮겨갔다.이들 중엔 뉴햄프셔의 앤트워스,보스턴의 허친슨,뉴욕의 드 랜시스와 필립스,필라델피아의 펜,메릴랜드의 캘버트 등 유명 가문들이 포함돼 있다.이에 따라 자연히 미국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부의 재편이 이뤄졌다.그러나 혁명 이후 새로 탄생한 백만장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독립전쟁 당시의 전시금융이나 선박나포와 같은 신생 미국 정부와의 커넥션을 통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었다.미국혁명은 일면 영웅적인 것으로 비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자의 표현대로 “공적 목표와 사적 이익이 혼합된 또 하나의 사례”다.

미국혁명으로 남부는 부를 상실하고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잃었지만,남북전쟁은 훨씬 더 참혹한 결과를 남부에 안겨줬다.남부가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북부에 패배한 것은 곧 경제적·재정적 파탄을 의미했다.남부의 400만 노예는 20억 내지 4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이를 고려하면 남부 백인의 1인당 부(富)는 북부인과 비슷했다.그러나 전쟁의 패배는 남부를 비참한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가축의 5분의2를 잃었으며 농업기계의 절반이 사라졌다.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새로운 갈등의 역사가 시작됐다.J P 모건·존 록펠러·앤드루 카네기·제이 굴드 등 19세기 후반 미국의 많은 대부호들은 대리인을 사서 징집을 피한 젊은 북부인들로,전쟁을 이용해 부의 사다리를 몇 계단씩 뛰어오른 인물들이다.

●겉은 번쩍이지만 속은 썩은 美현실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1930년대를 돌아보며 “미국이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과는 정반대로 기업의,기업에 의한,기업을 위한 정부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그의 분석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타당하다.부시 행정부는 이미 취임 두 달 만에 개혁주의자들로부터 ‘도금시대’가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도금시대는 경제가 팽창하고 금권정치가 횡행하던 1870∼98년경,겉은 번쩍거리지만 속은 썩은 현실을 풍자한 말이다.

미국의 백악관과 의회는 물론 사법부도 점점 대기업의 이해를 보다 많이 반영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저자는 지금 미국인들은 도금시대의 첫 번째 금권정치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의 금권정치체제를 맞이했다고 진단한다.이어 “재력가들이 지배하는 정부도 폭도들이 지배하는 정부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경구로 들려준다.

권력과 부의 관계를 해부한 이 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이라는 저자의 말은 바로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3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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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4-09-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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