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구명조끼 1만 4000개로 설치작품 만든 세계적 미술가 아이웨이웨이

난민 구명조끼 1만 4000개로 설치작품 만든 세계적 미술가 아이웨이웨이

오상도 기자
입력 2016-02-15 16:45
수정 2016-02-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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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콘체르트하우스가 1만 4000여 개의 구명조끼로 뒤덮였다고 미국 CNN방송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구명조끼들은 중국의 세계적인 반체제 설치 미술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작품이다. 아이웨이웨이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난민들이 착용했던 구명조끼들로 이 건물의 웅장한 기둥 6개를 장식했다. 작가는 “바다 건너 유럽으로 향한 중동 난민들의 고난을 알리기 위해 작품을 고안했다”고 말했다.

 아아웨이웨이의 설치미술팀은 작품을 하룻밤만에 완성했다. 난민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가져온 구명조끼들로 작품 설치를 마쳤다. 조끼들은 레스보스 행정 당국이 제공했다.

아이웨이웨이는 최근 유럽 난민 사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이달 초에는 지난해 터키 해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세 살배기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을 따라 해 주요 외신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지난달 말에는 덴마크의 난민 귀중품 압수 결정에 항의해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을 취소하고 미술관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모조리 철수시켰다. 당시 덴마크 의회는 난민들의 소지품 중 1만 크로네(174만원)를 초과하는 귀중품을 경찰이 압류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작품의 설치를 위해 아이웨이웨이는 유럽행 난민들의 주요 경우지인 레스보스섬을 여러 차례 방문해 몸소 난민들의 고충을 체험했다.

아이웨이웨이는 중국 정부의 강압 통치에 맞서온 대표적인 반체제 예술가다. 세계 미술 평론가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을 만큼 예술가 정신이 투철하다. 2005년부터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인 웨이보에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2008년에는 쓰촨성 지진으로 사망한 초등학생 5000명을 상징하는 책가방들로 독일 뮌헨의 미술관인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 설치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2009년 그의 웨이보 블로그를 강제 폐쇄하며 재갈을 물리려 했다. 2011년에는 탈세 혐의로 81일간 강제 구금했다. 이때 여권을 압수당한 그는 지난해 7월에야 이를 돌려받아 해외 활동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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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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