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 시대] ‘하느님의 충복’ 별명 보수주의자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대] ‘하느님의 충복’ 별명 보수주의자

입력 2005-04-21 00:00
수정 2005-04-2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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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베네딕토 16세(78)는 일생 동안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요한 바오로 3세’,‘하느님의 충복’이라는 별명이 그의 노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콘클라베가 시작된 뒤 그는 보수적 추기경들의 지지를 모으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교황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든에 가까운 고령인데다 지역적 지지기반이 약한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그는 “교황이 된다면 단기간만 재위하고 물러나겠다.”며 스스로 ‘과도기적 관리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평범한 유년기, 나치 전력으로 얼룩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4월16일 독일 바이에른주의 마르크트 암 인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전통적인 독일 농가의 분위기를 이어받았으며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열심히 배웠던 명민한 소년이었던 그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나치와 2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14살이었던 1941년 히틀러 소년단(유겐트)에 가입했던 것이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소년단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어 1944년 입대, 방공포 부대 소속으로 복무하던 중 탈영했다가 붙잡혔다. 전범수용소에 갇혀있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석방됐다.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명성얻어

이후 베네딕토 16세는 형 게오르그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 본격적으로 신학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2년 뒤 뮌헨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프라이징과 본, 튀빙겐, 레겐스부르크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가톨릭 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1962년 그는 35세의 나이로 쾰른대주교의 고문에 임명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1977년 2월 베네딕토 16세는 뮌헨대주교가 됐으며 석달 뒤 추기경에 봉임됐다.1981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베네딕토 16세를 교황청 신앙교리성성(聖省) 수장으로 임명, 이후 24년 동안 두 사람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1998년에는 추기경단 부단장,2002년에는 단장이 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베네딕토 16세가 실질적으로 교황청을 이끌어왔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평생 보수주의 유지

베네딕토 16세가 보수주의적 입장으로 돌아선 데에는 19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68운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동성애, 낙태, 피임, 여성 사제 서품 등에 대해 일관되게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베네딕토 16세는 종교적 자유·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 ‘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에 대해 “교회의 타락 과정이며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불길하고 파멸적인 것”이라며 분명하게 반대했다.2001년 6월 발표된 동성애와 자위행위 금지를 포함한 엄격한 교황청의 성윤리 지침과 지난해 7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교회와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에 관하여’라는 교황청의 문건을 작성한 사람도 바로 베네딕토 16세였다. 또 미국 주교들에게 낙태를 옹호하는 정치인에게 영성체를 베풀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고,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했다. 지난 13일에는 이혼, 동성결혼, 인간복제 등에 반대하는 교리를 담은 저서 ‘격변의 시대의 가치’를 출간했다.

●엇갈리는 평가

베네딕토 16세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지자들은 대표적인 지적 성직자인 베네딕토 16세가 뚜렷하고 명쾌한 교리를 제시, 가톨릭 내부의 단합을 이끌 것이라며 환영한다. 베네딕토 16세는 10개 언어를 구사하며 7개 분야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그를 ‘강요자’로 부른다. 이들은 ‘해방 신학’의 주창자인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징계했던 것처럼 새 교황이 진보적 성직자들을 처벌하고 가톨릭을 중세시대로 돌려놓을 것으로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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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2005-04-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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