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스위스 국민의 선택/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스위스 국민의 선택/구본영 논설고문

구본영 기자
입력 2016-09-27 22:54
수정 2016-09-2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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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유럽 몇몇 나라를 돌며 취재했던 적이 있다. 부자 나라 스위스 공항의 한 레스토랑에서 무심코 물 한 잔을 추가로 청했다. 나중에 계산하면서 ‘공짜’가 아님을 알았다. 알프스 산록에서 맑은 물이 무진장으로 흘러나오는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스위스에서 실시된 ‘국가연금 플러스’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59.4%가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연금 지급액을 10% 올리자는 법안을 부결시킨 것이다. 음식점에서 수돗물 값을 추가로 지불하며 스위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깼던 기자도 새삼 놀랐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도 있는데 스위스 국민이 ‘공짜 복지’ 유혹을 스스로 뿌리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스위스 국민은 지난 6월에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 성인 누구에게나 매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씩 기본 생활비를 보장하자는 법안을 부결시키면서다.

제3자로선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스위스 내부에선 합리적 결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오르그츠 로잔대 교수는 “인구 변화로 사회보장제도가 압박을 받을 경우 수혜를 늘리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스위스인들이 당장 입에는 달지만 포퓰리즘 법안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추가 세금 부담 없는 복지 확대는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알 만큼 현명했다는 뜻이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라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2020년 이후 연금 고갈을 걱정한 셈이다.

이런 ‘뜻밖의’ 선택은 스위스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됐음을 가리킨다. 스위스인들은 이미 남부럽지 않을 만큼 복지 혜택을 누리지만 정부의 복지 지출 규모는 북유럽의 복지국가 수준에는 못 미친다. 대신 양질의 사보험 혜택을 추가로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시계 산업을 비롯한 일부 업종 이외엔 이렇다 할 제조업이 없지만 대신 금융업이 발달한 덕분이다. 탈세를 노리는 세계 각국 부호들의 도피처가 되고 있다는 원성도 듣지만….

물론 경제 시스템의 안정성만 믿고 스위스인들이 굴러온 횡재를 마다했겠나. 어쩌면 정치적 안정이야말로 ‘현명한 스위스인’들을 배양한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경제학자 모니카 륄이 “연금 인상 법안 부결은 국민투표 제도가 잘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평가한 배경이다. 인구가 적은 스위스는 일종의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다. 수시로 국민투표를 실시해 민의 확인이 가능하다. 행정부는 7인의 장관으로 구성된 연방평의회이고, 대통령은 이들이 돌아가면서 1년씩 맡는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낼 정도다. 이러니 누구도 ‘제왕적 대통령’ 자리가 탐나 달콤한 인기영합 정책을 펴려고 하지 않을뿐더러 이에 솔깃해할 국민도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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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2016-09-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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