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디지털 유산/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디지털 유산/박홍환 논설위원

입력 2014-05-29 00:00
수정 2014-05-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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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갑자기 사망했다고 치자. 부동산이며 예금이며 보험 등은 당연히 유족에게 상속될 것이다. 사진이며 일기장이며 집안에 남긴 유품들도 유족의 손을 거쳐 정리될 것이다. 그러면 페이스북 계정이나 인터넷 블로그 속 자료들은 어떻게 될까. 하루 수천·수만명이 접속하는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했거나 파워블로거였다면 그 자체의 재산적 가치도 상당할 것이다. 이른 바 ‘디지털 유산’의 보존 및 상속 문제가 대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4년 미국의 한 이라크 파병 전사자의 아버지는 야후를 상대로 아들의 이메일 계정 열람을 요청했다. 야후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거절했고, 아버지는 결국 소송을 통해 아들의 이메일 내용이 담긴 CD를 건네받았다. CD 등 저장장치를 이용한 디지털 유산 상속 방식은 이후 미국의 많은 주에서 법률로 시행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3월 미 버지니아주 의회는 미성년 사망자의 디지털 재산 보존에 관한 법률을 최종 확정했다. 2011년 1월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한 아버지가 단서를 찾기 위해 아들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하려다 거절당한 사건을 계기로 입법이 추진돼 마침내 결실을 본 것이다. 법률은 비록 미성년자의 사망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디지털 유산의 보존 및 공개 등의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도 천안함 유족들이 희생 장병의 미니홈피 등에 접속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일을 계기로 디지털 유산에 대한 관심이 차츰 높아지고 있다. 개인의 비밀이기 때문에 가족 등에게조차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론과 고인과의 추억 등을 되새기려는 가족들에게 디지털 유산을 상속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찬성론이 팽팽하다. 법률적 쟁점은 디지털 정보를 유체물, 즉 소유의 객체인 물체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인데 세계적 대세는 이미 상속하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최근 대법원 사법제도비교연구회가 디지털 유산의 상속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통신비밀보호법 등에 규정된 디지털 정보 처리 규정 등의 보완을 비롯해 디지털 유산의 상속을 규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죽기 전에 마무리지어야 할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부동산이나 예금, 보험 등 재산의 상속은 물론 SNS 계정이나 홈페이지 등의 처리 문제까지 골치 썩일 일이 더 늘었다. 이러다 페이스북 계정은 아내, 트위터 계정은 장남, 네이버 블로그는 차남 등으로 상속자를 미리 정해 유언을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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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2014-05-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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