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농구와 동무/강동형 논설위원

[길섶에서] 농구와 동무/강동형 논설위원

강동형 기자
입력 2016-10-20 22:52
수정 2016-10-20 22:5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서랍을 뒤적이다 빛바랜 공책 한 권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장이었다. 고향에 있어야 할 물건을 아내가 몰래 가져다 놓은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신혼 초에 맞춤법이 다 틀린 일기장을 보고서 약점을 잡았다며 통쾌해했기 때문이다.

일기장에 ‘농구’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단어가 있었다. 농구 하면 당연히 농구 게임을 했다는 얘기일 텐데 내용이 좀 엉뚱했다. ‘오늘은 학교에 농구를 가지고 가는 날이다. 그런데 나는 안 가지고 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문맥의 앞뒤를 이리저리 맞춰 보고서야 ‘농구’가 뭘 의미하는지 겨우 알 수 있었다. 농구는 다름 아닌 농기구의 준말이었다. 그 시절 시골 학교에서는 고학년을 중심으로 가끔 호미나 삽, 괭이 등 농기구를 들고 가 풀을 뽑고 운동장을 고르곤 했다. 농구를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은 벌을 받은 뒤 맨손으로 풀을 뜯었던 기억이 새롭다. 농구와 함께 ‘낯선 단어’ 하나는 지금은 까마득하게 잃어 버린 ‘동무’라는 단어였다. ‘오늘은 동무들과 놀았다.’ 동무는 일기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였다. 같이 놀던 동무들이 유난히 그리운 것은 가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2016-10-21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