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조문단으로부터 남북협력의 진전에 관한 김 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받자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원칙을 설명하고 나서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구두메시지에 구두메시지로 응수한 셈이다. 북 조문단이 서울에서 보인 행보는 많은 변화를 느끼게 한다. 꼬일 대로 꼬여 사상 최악의 수준에서 성사된 남북접촉치곤 모양새가 괜찮았다. 그동안 남북접촉은 남쪽은 애를 태우며 기다리고, 북은 느긋하게 즐기는 식이었다. 이번 북 조문단의 청와대 접견은 정반대였다. 방한 첫날 우리 정부 쪽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이틀째인 22일 전 정권출신 민간인사들과의 조찬석상에서 “이 대통령을 만났으면 한다.”라고 김 비서가 운을 뗐고 이 발언이 청와대로 전달되면서 당국 간 접촉이 급진전됐다고 한다.
청와대는 면담을 쉽게 수용하지 않았다. 북의 평화공세적 조문외교에 말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북핵 이후 궁지에 몰린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을 남북관계 진전으로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간파됐다. 북·미 직접 대화라는 과실은 따먹으면서 6자회담은 거부하는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 말릴 이유가 없었다. 급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며 남북관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금도(襟度)를 지키자는 주장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북의 조문외교로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해빙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 정부가 내세운 ‘비핵·개방 3000’ 구상은 결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 진전과 속도에 따라 남북관계를 전개한다는 정부의 원칙은 확고하다. 이번 당국접촉과 청와대 면담은 남북관계가 바닥을 쳤다는 데 의미가 있다. 파행적 남북관계가 정상화로 가는 변곡점일 뿐이다. 이 대통령은 이미 광복절 경축사에서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화해·협력의 큰 그림을 제시했다. 이제 김 위원장이 화답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