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욱 풀뿌리 정치]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를 망치고 있다

[정세욱 풀뿌리 정치]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를 망치고 있다

입력 2010-09-01 00:00
수정 2010-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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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품은 승리자에게 귀속한다.’ 일찍이 윌리엄 마시 미국 상원의원이 한 이 말은 공직인사에서 엽관제(獵官制)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잭슨 대통령이 1829년 이래 엽관제를 본격 시행하면서 공직은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의 전리품이 되어 집권당이 자의적으로 임면했다. 관료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정당관료제하에서 관료들은 공직을 유지하기 위해 임면권자인 집권당을 위해 봉사해야 했고, 정당에 대한 충성의 징표로 공금을 횡령해 정치자금을 헌납하는 비리도 저질렀으며, 정권 교체 시마다 관료의 대량 물갈이로 유능한 자가 면직되고, 무능한 자가 임명돼 행정의 비능률과 질 저하를 초래했다.불필요한 관직을 남설하여 관료를 임명한 까닭에 예산이 낭비되고 국민부담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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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
엽관제는 1881년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엽관운동에 실패한 자에게 암살당한 후 1883년 ‘펜들턴법’이 통과되어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정치적 중립이 실현되기까지 시행돼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입혔다.

공직을 선거 승리자의 전리품으로 인식하는 엽관제의 망령이 우리나라 지방자치 시행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소속 공무원, 지방의원들을 마치 자기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리품인 양 착각하는 것 같다. 민주당 소속 김학규 용인시장은 “단체장을 정당의 전리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문제”라며 지역구 U국회의원이 용인시 국장, 과장과 산하단체장에 특정 인사들을 임명하도록 요구한 것을 비판했다. 인사 외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김 시장의 용기와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

김 시장은 인사 압력을 거부했지만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소속 정당이 같은 전국 대다수 지자체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인사, 공사입찰 등에 개입하고 있다. 다만 외부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조용수 울산 중구청장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는데,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 재임 시절에는 J국회의원의 인사 개입 등이 심했으나 지금은 소신행정을 펼치게 됐다. 고양시에서는 국회의원 출신 지역위원장이 민주당 최성 고양시장 당선에 일조한 공을 내세워 시정위원회를 조기에 구성, 시정에 관여하려 해 시장과 갈등을 빚고 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6·2지방선거에서 각종 정책과 사업을 놓고 S국회의원과 갈등을 빚자 민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비난하며 대립하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의 고질적 인사 개입은 사라졌다.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은 홀로 하향식 공천을 한다. 후보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거액의 대가를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들은 장차 자신과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유능한 인재를 공천에서 배제하고, 수족같이 부릴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하려 한다. 능력은 공천의 기준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기초단체장을 자기가 뽑아준 양 인사에 개입하고, 기초단제장은 다음 선거 공천을 받기 위해 인사 압력을 수용한다. 책임정치를 위해 정당이 후보공천을 해야 한다지만 지금까지 정당들이 비리행위자 등을 후보로 잘못 공천한 데 대해 책임진 적이 없다.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지자체의 장과 의원 후보를 지역구 국회의원이 독단적으로 공천하는 나라는 없다.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들이 거의 없어 당원투표로 정당 후보를 상향식으로 공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국회의원에게 예속되지 않으려면 정당공천제를 금지하는 방법밖에 없다. 국민의 70% 이상이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를 찬성하고, 심지어 정당공천제의 최대 수혜자인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도 만장일치로 정당공천제 폐지를 정치권에 촉구했다. 기초단체의 장과 의원은 정당과 국회의원의 전리품이 아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공천헌금을 받아 배불리고,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을 부하처럼 부려 먹으라고 지방자치 하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지방자치를 망친 인물’이란 오명을 정치사에 남기지 않으려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아간 장본인들이란 혹독한 평가를 받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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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명예교수
2010-09-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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