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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박태환과 김연아/최병규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박태환과 김연아/최병규 체육부 차장

입력 2013-03-26 00:00
업데이트 2013-03-2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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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규 체육부 차장
최병규 체육부 차장
며칠 전 일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회사 동료가 “야~ 박태환이 홈쇼핑에 나온 거 봤어?”라고 큰 소리로 물었다. 목소리의 톤이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 격앙돼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박태환을 지켜봐 온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낮술 탓에 잘못 본 걸 가지고 떠드는 거겠지” 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인터넷이 들끓었다. 박태환의 TV 홈쇼핑 출연은 사실이었다. “바보처럼 쭈뼛대면서 말도 제대로 못하더라”는 동료의 전언이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다.

사실 TV 홈쇼핑 출연이라고 해서 짐짓 입방아 찧을 일은 아니다. 박태환은 그동안 TV뿐만 아니라 후원사였던 SK텔레콤의 모델 활동, 각종 매체에 얼굴을 내밀면서 무수히 많은 광고를 찍었다. 따라서 그가 홈쇼핑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했다고 해서 가십거리가 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른 광고는 되고 어린이용 영양제를 판매하는 TV 홈쇼핑 출연은 못 봐 주겠다는 건 억지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타이밍이다. 박태환은 지난해 10월 SK텔레콤과 결별한 뒤 지금껏 새 후원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가 7명 안팎의 ‘박태환팀’을 거느리고 미끈한 외제 밴을 타고 다니던 것이 불과 6개월 전이다. 우리나라에 첫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안겨 준 스물넷 한창 나이의 수영선수 박태환이 왜 SK텔레콤과 결별했는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필요도 없고 캐물을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이러한 상황에서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박태환이 아니다. 그가 경쟁자들보다 한 뼘 앞서 헤엄칠 때 그리고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가 금빛 메달을 목에 걸 때 눈물 흘리며 박수 치던 국민들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이다.

‘평행이론’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 똑같은 존재가 저 먼 우주 어딘가에 똑같이 살고 있다는 가설이다. 박태환과 김연아는 우주 저 멀리 갈 것도 없이 같은 지구,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똑같이 살고 있는 ‘닮은꼴’이다. 이제 이런 비유는 식상하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소외된 종목을 올림픽 금메달 종목으로 바꾼,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이었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로 국민들의 고단한 삶에 기운을 불어넣어 준 젊은이들이다.

우리의 자존심이 배신당한 건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박태환과 김연아의 ‘평행이론’에 쫘악 금이 갔기 때문이다. 실망과 상실은 곧 분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같은 시기에 세상에 알려지고, 비슷한 때 세계 정상에 서고, 나란히 올림픽 뒤에 좌절을 맛본 다음 한쪽은 제 궤도를 찾았다. 다른 한쪽은 제대로 몸을 추스를 둥지조차 찾지 못하고 홈쇼핑 화면에 얼굴을 비추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둘의 평행선이 뒤틀어진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들이 공분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박태환은 의리파다. 낯가림이 심하지만 한 번 마음을 주면 수영하듯 최선을 다한다. 제법 긴 시간의 후원을 약속해 준 중소기업의 특허 받은 제품을 위해 딱 한 번 나가는 조건으로 홈쇼핑 출연에 합의했다는 게 알려진 진실이고 보면 그리 분기탱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영원한 스포츠 스타는 없다. 박태환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물러나는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올림픽까지 3년이 남아 있다. 박태환이 김연아와의 뒤틀어진 평행선을 제대로 펴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cbk91065@seoul.co.kr

2013-03-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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