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국제부장
오바마를 처음 본 것은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직후인 2004년 7월27일.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의 둘째날 (TV로 생중계되는) ‘프라임 타임’ 연사로 나왔을 때다. 그 당시에는 오바마라는 인물보다는 그를 그처럼 중요한 정치무대에 당당히 세워준 민주당 지도부의 배려가 더욱 놀라웠을 따름이었다.
그해 말 오바마가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의회에서 이따금 그를 볼 수 있었다. 미국 기자들은 그에게 대선 출마 여부를 질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기자나 미국기자나 ‘립서비스’ 해대는 것은 똑같다.”는 정도로 치부했다.2007년 1월 오바마가 실제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욕심이 앞선다.”고 생각했다.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서서히 달아오르던 그해 6월3일. 뉴햄프셔 주에서 두 당 후보들의 합동토론회가 차례로 열렸다. 토론회 전날 미 대선 후보 경선의 모든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는 ‘뉴햄프셔 정치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2008년 대선을 전망하면서 “멍청한 백인 남자들(Stupid White Men·마이클 무어 감독의 책 제목)은 오바마를 찍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그러나 정치박물관에서 만난 레이 버클리 뉴햄프셔 주 민주당 의장이 들려준 힐러리·오바마 캠프의 비교 논평이 계속 귓가에 남았다. 힐러리 진영은 당시 뉴햄프셔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하고 ‘비싼’ 선거 전문가들을 싹쓸이해서 캠프를 꾸렸다고 한다. 반면 오바마 캠프는 ‘젊음’과 ‘열정’만 가득한 아마추어들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간을 일한다고 버클리 의장은 말했다. 만일 이런 열정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전국으로 확산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참으로 궁금하다고 그는 말했다.
2008년 1월2일 마침내 아이오와 주에서 첫 경선이 열렸다. 경선 전날 밤 힐러리와 오바마가 디모인 시내의 비슷한 장소에서 마지막 유세를 가졌다.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힐러리 쪽을 선택했다. 그녀가 이길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힐러리의 유세는 나름대로 성황이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열기는 없었다. 오히려 오바마 쪽이 뜨거웠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다음날 저녁 디모인 컨벤션센터. 경선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냈다.“결코, 이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자들은 말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다(Yes, We Can).” “미국의 변화를 믿는다(Change We Believe In).”오바마의 가슴 벅찬 연설을 들으면서 그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는 지난 3월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순간까지도 남아 있었다.
지난 3일 저녁. 오바마는 단 한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었던 버지니아 주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였다.“미국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고 호소했다. 오바마의 호소를 결국 버지니아는 받아들였다. 놀라운 변화였다.
오바마의 말대로 미국이 바뀌니 전세계가 바뀐 듯하다. 지난 8년 동안 찢기고 불태워지던 성조기가 전세계인의 환호 속에 하늘 높이 휘날리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적어도 미국이 세계의 변화를 선도했다는, 또 선도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국인들의 대담한 변화를, 그리고 위대한 승리를 축하한다.
이도운 미래기획부 차장 dawn@seoul.co.kr
2008-11-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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