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나들섬과 마중물/구본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나들섬과 마중물/구본영 논설위원

구본영 기자
입력 2007-06-20 00:00
수정 2007-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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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을 흔히 딜레마(dilemma)라고 한다. 하지만 구어체 영어에선 희랍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보다 더 많이 쓰는 관용어법이 있다. 즉 “I’m in a catch-22 situation.”(난 진퇴양난에 빠졌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catch-22’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지중해의 미 공군기지를 배경으로 한 조지프 헬러의 소설 제목이었다. 전사율이 높은 폭격기를 그만 타려면 정신병자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비행기를 그만 타겠다고 신고하는 순간 미치지 않았다고 간주되는 주인공의 처지가 소설의 핵심이었다.

북한 체제가 개혁·개방에 관한 한 이 소설 주인공과 같은 처지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당면한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과감히 개방을 해야 하나 그럴 경우 외부 사조의 유입으로 체제가 흔들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금강산특구를 열어놓고도 남측 관광객과 현지 북한주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성공단의 남측 중소기업으로 출퇴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콩나물 시루’같은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사정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측이 경의선 통근열차 운행을 거부하는 이면에도 개방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강 하구 퇴적지를 매립, 인공섬을 만들어 남북경협단지를 건설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남북이 오가는 장(場)이라는 뜻에서 섬 이름을 ‘나들섬’으로 짓겠다고 했다. 경제성은 전문가들이 따져 보겠지만, 북한을 개방시킨다는 측면에선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보다 더 파격적이다. 북한 노동자들이 대거 남쪽으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외개방이 딜레마인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라는 게 문제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그제 탈당하면서 대통합의 ‘마중물’이 되겠다고 했다. 대통합은 범여권의 바람이겠지만, 북한의 개방과 남북관계 개선은 온국민의 소망이다. 꼭 나들섬 프로젝트가 아니라도 좋다.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에 부어 샘물을 길어올릴 때처럼 북한의 개방을 촉진하는 마중물 같은 다양한 정책공약들이 나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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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07-06-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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