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벽장 속 카메라/황성기 논설위원

[길섶에서] 벽장 속 카메라/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입력 2007-05-26 00:00
수정 2007-05-26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어디를 여행 가건 필수품으로 챙기던 카메라를 좀처럼 들고 다니지 않게 된 것은 요 몇년 사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용돈을 모아 산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플라스틱 카메라를 손에 쥐고 세상을 얻은 듯한 기쁨을 느꼈던 게 옛날은 옛날인 듯싶다. 지금은 그럴싸한 아날로그 카메라와 아들이 내팽개친 디지털 카메라가 집에 있어도 여간해선 들고 나설 기분이 나지 않는다. 우선은 귀찮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 가벼워야 할 여정에 카메라란 존재의 무거움이 싫어졌다.

카메라가 있으면 뭔가를 찍어야 할 것 같은 강박증,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셔터를 누르는 동작에 위화감까지 드는 것은 여행 방법을 쓸어담기에서 보고 흘리기로 바꾼 데 한 이유가 있을 터다. 또 하나. 마음 먹고 들고 나선 카메라로 기껏 좋은 풍광을 배경 삼아 자신을 담아 넣어도 그 속에 있는 ‘내’가 왠지 어색해진다. 그건 아마도 날마다 거울에서 확인하는 피사체보다는 몇 년은 더 노화한 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저런 까닭으로 벽장 속 카메라에는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07-05-26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